국방정부의 교육장관으로 보르도에서 강베타를 밀어낸 온건 공화파 철학자·총리
1814년 로리앙에서 태어났고 본래 성은 쉬스였다. 고등사범학교를 나와 빅토르 쿠쟁의 대리로 소르본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1848년 제헌의회 의원이 되었고, 1851년 쿠데타 뒤 루이 나폴레옹에게 충성 서약을 거부해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1863년 입법원에 들어가 「5인」의 반대파를 지지했고, 1870년 9월 국방정부의 교육장관이 되었다. 1871년 2월 파리 항복 뒤 보르도로 가 강화에 반대하던 강베타와 맞섰고 강베타는 물러났다. 티에르 내각에서 교육장관을 이어 맡았고 1876년 총리가 되었으나 1877년 5월 16일 마크마옹의 압박으로 사임한 뒤 다시는 관직을 맡지 않았다. 집산주의에는 늘 반대했다.
다른 이름: 쥘 프랑수아 시몽 · 쥘프랑수아시몽 쉬스
주요 활동과 소속
- 1870–1877 정부·행정 · 프랑스 국가기관
- 1848–1896 입법·국가 대표 · 프랑스 국가기관
- 1871–1896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848제헌의회 의원
- 1863입법원 의원
- 1870–1873교육장관
- 1875종신 상원의원
- 1876–1877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