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리앵 레몽

Julien Raimond
프랑스 아이티 1744–1801 ○ 자연사

파리에서 자유 유색인의 평등권 운동을 이끌고 1801년 생도맹그 헌법 기초에 참여한 쪽빛 염료 농장주

생도맹그 남부에서 프랑스인 식민자 아버지와 유색인 어머니 사이에 자유 유색인으로 태어나, 1780년대 노예 100명 넘게 가진 쪽빛 염료 농장주가 되었다. 1785년 프랑스로 건너가 자유 유색인 차별법 개혁을 식민부에 요구했고, 1789년 12월 다른 대표들과 국민제헌의회에 청원서를 냈다. 오제, 그레구아르 신부, 흑인우호협회(뒤에 그 지도자가 되었다)와 함께 자유 유색인의 평등권을 의회의 주요 식민지 문제로 만들어 1791년 5월 15일 법령을 끌어냈다. 점진적 노예 해방을 구상했으나 송토나의 해방이 앞질렀다. 정부 대표로 돌아가 플랜테이션 재건을 도왔고, 1801년 루베르튀르의 헌법을 기초한 위원 10명 가운데 하나로 일한 직후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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