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오자스 유오조비치 예르말라비추스

Juozas Jermalavičius
소비에트 연방 리투아니아 1940–2022 ○ 자연사

빌뉴스 1월 사태에서 국가구원위원회를 선포한 모스크바파 리투아니아공산당 이념서기

1991년 1월 13일 소련군 BMP 확성기에서 그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리투아니아 형제들이여, 인민에게 맞섰던 민족주의·분리주의 정부는 전복되었다!」

리투아니아 남부 농가 출신으로 빌뉴스대학과 레닌그라드 고등당학교를 마친 뒤, 20년간 당 역사연구소에서 학자로 일하며 종교·무신론을 연구했다. 1990년 친모스크바 리투아니아공산당(CPSU 강령파) 이념부장이 되어 리투아니아 독립에 격렬히 반대했고, 1991년 1월 11일 '리투아니아 국가구원위원회' 창설을 발표해 소련군 작전의 정치적 명분을 제공했다. 1999년 반국가조직 활동과 폭력적 정권 전복 선동으로 8년형을 선고받았고, 출소 후 러시아로 이주해 사망할 때까지 소련 체제를 옹호하는 저술을 계속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90-1991년 병행 권력 구축과 1994년 체포, 1999년 재판

예르말라비추스는 1970년대 사료 연구에서 1990년대 정치 활동으로 옮겨가면서, 공화국 정부와 병존하는 조직을 세우는 데 깊이 관여했다. 1990년 2월 최고회의 선거에서 부로케비추스가 이끄는 리투아니아공산당(소련공산당 강령파)이 의석을 얻지 못한 뒤, 같은 해 6월 부로케비추스·유오자스 쿠올렐리스와 함께 무력으로 점거한 빌뉴스 사범대학 구내에서 라디오 방송국 '타리부 리에투바'와 부속 조직들을 세웠다. 이 방송국은 레오나스 바르토셰비추스와 스타니슬로바스 미츠케비추스가 운영했고 1991년 8월까지 존속했다.

1991년 1월 11일에는 리투아니아공산당 중앙위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념부장 자격으로 이른바 '리투아니아공화국 구국위원회'의 수립을 발표하며 전권 장악을 선언했고, 같은 해 1월 13일 빌뉴스 TV탑 함락 직후 군용 차량의 확성기를 통해 정부가 전복되었다고 방송했다. 8월 모스크바 쿠데타가 실패하자 리투아니아공산당(소련공산당 강령파)은 8월 22-23일 금지되었고, 그는 민스크로 피신했다.

1994년 1월 15일 민스크에서 부로케비추스와 함께 리투아니아 당국에 체포되어 리투아니아로 넘겨졌다. 1996년 6월 19일 48명을 대상으로 한 기소 문서가 빌뉴스 지방법원에 회부되었고, 법원은 리투아니아에 신병이 있는 6명과 해외에 숨은 42명으로 사건을 분리했다. 1999년 8월 23일 빌뉴스 지방법원은 부로케비추스 12년, 예르말라비추스 8년, 쿠올렐리스 6년, 바르토셰비추스 3년, 미츠케비추스 4년, 프로코파비추스 6년의 형을 각각 선고했다. 예르말라비추스는 2002년 1월 15일 석방되었고 곧 러시아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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