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일라리오노비치 키리첸코

Алексей Илларионович Кириченко
소련 우크라이나 1908–1975 ↓ 실각 1960

흐루쇼프 초의 당 임명 담당 서기

1957년 6월 반당 그룹과의 대결에서 키리첸코는 논거를 고르는 수고도 없이 모든 비난을 거칠게 쳐내며 흐루쇼프 편에 섰다. 흐루쇼프 없이는 자신에게도 미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당 역사상 첫 우크라이나인 제1서기로, 1957년 반당 그룹에 맞서 흐루쇼프를 결사적으로 지지하며 모스크바 중앙위 서기로 발탁되었다. 1958년 사실상 당 제2서기로서 서기국을 주재하고 인사권을 장악했으나, 거친 성격과 독자적 행보로 동료들의 반감을 사고 흐루쇼프의 신임마저 잃었다. 1960년 실각 후 공장장으로 전락했다가 연금 생활자로 완전히 밀려났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실각: 제2인자에서 망각으로

1958년 1월 흐루쇼프는 키리첸코를 사실상 당 중앙위원회 제2서기로 임명하고 서기국 회의 주재와 산업 총괄을 맡겼다. 키리첸코는 핵심 인사부서인 당 조직 담당 부서까지 장악하며 서열 2위로 부상했으나, 거만하고 무뚝뚝한 태도로 동료 지도부의 반감을 샀다. 주코프 원수는 그를 '최악의 의미에서 오데사식 인물'이라고 평했고, 미코얀과도 충돌했다. 1959년 겨울 자비도보 사냥터에서 흐루쇼프와 같은 멧돼지를 쏘며 누가 맞혔는지 공개적으로 논쟁한 사건은 결정적 균열을 남겼다.

1959년 11월 흐루쇼프는 그를 제2서기 직무에서 배제했고, 1960년 5월 중앙위 전원회의는 키리첸코를 당 중앙위 간부단 및 서기국에서 공식 해임했다. 로스토프 주당 제1서기(1960년 1~6월)로 좌천되었으나 한 달 만에 그 자리에서도 쫓겨났다. 이후 펜자 디젤공장장과 연구소장을 전전하다 1962년 54세의 나이에 연금생활자로 밀려났다. 1975년 사망했을 때 중앙 언론은 부고조차 싣지 않았고, 《붉은 별》만이 '예비역 소장'이라는 군 경력만을 짧게 알렸을 뿐, 그가 당 최고지도부였던 사실은 완전히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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