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안토노비치 페트르자크

Константин Антонович Петржак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폴란드 1907–1998 ○ 자연사

우라늄 자발핵분열을 발견하고 소련 원자폭탄의 토대를 놓은 물리학자

중성자원을 제거한 뒤에도 이온화실은 계속 신호를 냈다. 우주선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모스크바 지하철 디나모 역 50m 지하로 실험을 옮긴 끝에, 페트르자크와 플료로프는 우라늄이 스스로 갈라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소련의 핵물리학자. 1940년 게오르기 플료로프와 함께 우라늄-235의 자발핵분열을 발견하여 소련 원자폭탄 계획의 과학적 토대를 놓았다. 전쟁 중 군복무를 거쳐 1942년 카잔으로 복귀, 쿠르차토프의 지휘 아래 중성자원 측정법(동반입자법)을 개발하고 플루토늄 신속검출 기술을 확립했다. 1947년 흘로핀 라듐연구소에 중성자물리·핵분열 연구실을 설립해 40년 가까이 이끌었으며, 1949년 렌소베트 기술원에 핵물리학과를 창설해 소련 핵산업 인력을 양성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렌소베트 기술원 연구학교와 정밀 핵분열 측정 (1949~1990년대)

1949년 페트르자크는 레닌그라드 렌소베트 기술원(LTI)에서 공학 물리화학 학부를 세우고, 그 세 학과 가운데 하나인 핵물리학과를 1974년까지 이끌었다. 새로 만들어진 이 학부는 당시 걸음마 단계였던 원자력 산업에 공학 인력을 공급할 목적이었고, 핵물리학과는 화학계 대학 안에서 핵물리학과 방사능, 이온화 방사선과 물질의 상호작용, 핵전자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다. 이 학과는 학부 다른 학과들의 과학·교육 수준에도 영향을 주었고, 수백 명의 졸업생이 이곳을 거쳐 갔다.

1952~1953년 LTI에 15 MeV 베타트론이 설치·가동되면서 학과 연구는 새 국면을 맞았다. 페트르자크의 지도 아래 교직원과 학생들은 우라늄-238과 토륨-232의 광핵분열 생성물 수율을 측정하고, 우라늄-235와 플루토늄-239의 광핵분열에서 나오는 지발중성자를 연구했다. 이 결과들은 핵데이터 참고자료에 실려 해당 핵종의 광핵분열 특성값으로 오래 쓰였다. 1961년에는 자기 학과에 핵에너지 문제연구실을 조직해 연구 범위를 넓혔다.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페트르자크와 연구진은 고정 에너지 중성자와 캘리포늄-252 분열 스펙트럼 중성자에 대한 주요 핵종의 핵분열 단면적을 정밀하게 절대 측정하는 대규모 연구를 수행했다. 1995년에는 사용후핵연료 변환 구상을 위한 마이너 악티나이드의 즉발중성자 스펙트럼 정밀 측정이 시작되었고, 그는 초기 과제 준비에 참여한 뒤 죽기 직전까지 고문으로 참여했다. 이 학교에서 수십 명의 후보·박사 학위자를 길러냈고, 연구 성과는 300편이 넘는 출판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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