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케시 라슬로

Tőkés László

강제 퇴거 시도가 루마니아 혁명을 촉발한 헝가리계 목사

군중은 저항의 원래 이유를 잊고, 일반적 의미에서 체제 자체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클루지 출신의 헝가리계 개혁교회 목사로, 차우셰스쿠 정권의 조직적 마을 파괴 계획(체계화)을 공개 비판하고 헝가리 TV와의 비밀 인터뷰에서 인권 유린을 고발하며 세큐리타테의 표적이 되었다. 1989년 12월 16일 티미쇼아라에서 당국의 강제 퇴거 집행을 막으려 모인 신도들의 저지로 시작된 시위는 곧 반체제 봉기로 확산되어 루마니아 혁명의 직접적 발단이 되었다. 혁명 후 오라데아의 개혁교회 주교로 선출되어 교회 재건과 헝가리어 교육에 힘썼으며,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89년 이후 소수민족 정치와 자치 운동

1989년 12월 봉기 이후 퇴케시는 교회와 소수민족 정치 두 영역에서 활동했다. 1990년 그는 오라데아의 키라이하게멜레키 개혁교회 교구장 주교로 선출되어 2009년까지 재임했고, 2004년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같은 해 그는 루마니아 개혁교회 총회의 공동의장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혁명 직후 결성된 루마니아 헝가리인민주연맹(RMDSZ)의 명예의장으로 선출되어 1990년부터 2003년까지 그 직을 지녔다. 그러나 그는 곧 이 조직의 주류 지도부와 갈등을 빚었다. 1996년에는 RMDSZ의 정부 연립 참여에 반대했고, 2000년 총선 전에는 헝가리계 유권자들에게 RMDSZ에 투표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마로슈바셔르헬리(티르구무레슈)에서 벌어진 1990년 3월의 민족 간 충돌 이후 그는 국가구원전선 평의회 의원직에서도 물러났다. 2003년 RMDSZ의 사투마레 대회가 명예의장직 폐지를 결정하자, 퇴케시는 별도의 조직을 세웠다. 그해 창설된 에르데이헝가리민족평의회(EMNT)는 트란실바니아 헝가리계의 여러 형태의 자치를 목표로 내걸었고, 그는 창설 때부터 의장으로 활동했다. 이 노선은 헝가리계 정치 세력의 분화로 이어져 2010년에는 새 정당 창당 구상이 제기되었고, 2012년 2월 에르데이헝가리인민당(EMNP)이 첫 대의원총회를 열었다. 그는 또 카르파티아 유역 헝가리인 자치평의회(KMAT) 의장을 맡았다. 이와 병행해 그는 민간 기관을 통한 제도 건설에 힘썼다. 1999년 문을 연 파르티움 기독교대학은 루마니아 최초의 헝가리어 사립대학이었으며, 그는 이 대학의 총장을 지낸 뒤 2000년부터 이를 운영하는 파르티움대학재단(PUPA)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유럽의회 의원으로 재직하던 2009년에는 '유럽의 양심과 전체주의' 결의안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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