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득토

Lê Đức Thọ
베트남 베트남 1911–1990 ○ 자연사

키신저와 비밀 협상으로 파리 협정을 이끌고 노벨 평화상을 거부한 베트남 노동당 정치국원

레득토는 1968년 파리 회담에 참여해 북베트남 대표단을 실질적으로 이끌었고, 1970년부터 키신저와 비밀 협상을 벌여 1973년 파리 협정에 서명했다. 남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노벨 평화상을 거부했다.

남딘 출신으로 본명은 판딘카이다. 1930년 인도차이나 공산당 창당에 참여했고 1930~1936년과 1939~1944년 프랑스 식민 감옥에 갇혔다. 항불전쟁 때 남부에서 레주언과 함께 당 조직을 맡았고, 1955년 베트남 노동당 정치국에 들어갔다. 1968년 6월 파리 협상에 합류해 실질적으로 북베트남 대표단을 이끌었고, 1970년 2월부터 키신저와 비밀 협상을 벌여 1973년 1월 파리 협정을 맺었다. 그해 키신저와 함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정해졌으나 남베트남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1990년 하노이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72년 협상 전략과 10월 잠정 합의

1972년 여름, 레득토는 군사적 승리만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기 어렵다는 당 지도부의 판단 아래 키신저와의 협상에 복귀했다. 7월 정치국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끝내는 데 필요한 양보를 검토하되 핵심 이익을 지키고, 협상 시기를 전황과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토는 8월 회담 뒤 쑤언투이와 함께 미국의 제안을 분석해 하노이에 보고했다. 두 사람은 상대의 의도를 살피면서 원칙은 지키고 전술은 유연하게 운용하자는 방침을 세웠다.

10월 8일부터 이어진 집중 협상에서 토는 전쟁 종식과 미군 철수, 포로 송환을 우선하는 정치국의 지침을 실행했다. 10월 12일 하노이에 보낸 보고에서 그는 정치국이 정한 목표를 대체로 달성했다고 평가하면서 무기 교체, 정치범, 국제위원회 문제를 미해결 쟁점으로 들었다. 10월 17일 양측은 잠정 합의문에 이르렀지만 남베트남 대통령 응우옌반티에우가 주요 조항을 거부해 발효되지 않았다. 추가 협상 뒤 파리 협정은 1973년 1월 27일 서명됐다. 협정은 미국의 직접 군사 개입을 끝냈지만 안정된 휴전이나 정치적 타결을 이루지 못했고, 전투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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