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공에서 대통령이 된 연대노조의 지도자
누군가 내게 공산주의를 무너뜨리는 지도자가 될 거라고 말했다면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은하계 전체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단스크 조선소의 전기공으로, 1980년 파업을 이끌어 독립 자주 노조 '연대'를 결성하고 공산 정부와의 그단스크 협정을 이끌어냈다. 계엄령 아래 투옥되었고 198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 원탁회의의 비공식 야권 대표로서 폴란드의 평화적 체제 전환을 협상했다. 1990년 폴란드 최초의 직선 대통령에 당선되어 시장경제로의 이행과 소련군 철수를 주도했으나, 1995년 재선에 실패하며 정치에서 물러났다. 한 노동운동가의 성공은 소비에트 블록 전체에 균열을 낸 신호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80그단스크 조선소 파업 주도·연대노조 결성
- 1980–1981연대노조 위원장
- 1983노벨 평화상 수상
- 1989원탁회의 야권 대표·부분 자유선거 승리
- 1990–1995폴란드 대통령
- 1995대선 패배·정치 은퇴
관련 역사 사건
지하 연대와 계엄령 이후의 투쟁, 1982~1989
1981년 12월 13일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연대를 불법화하면서 바웬사는 다시 체포되었다. 그는 1982년 11월 14일까지 약 11개월 동안 수용되어 있었다. 당국은 그를 회유해 자신들이 통제하는 새 '연대'의 명목상 위원장으로 내세우려 했으나 그는 협상을 거부했다.
석방된 뒤에도 바웬사는 지하 연대의 지도자로서 1980년대 말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지하 주간지의 매호에는 그의 좌우명이 실렸고, 그는 비합법 조직과 준합법 조직을 넘나들며 노조를 재건했다. 1986년 연대 활동가 사면 이후에는 계엄령 선포 이래 처음으로 공개된 합법적 연대 조직을 공동 창립했고, 1987년부터 1990년까지는 준비밀 성격의 임시 집행위원회를 이끌었다. 1980년대 내내 그는 국가보안기관에 수시로 소환되어 심문을 받았다.
1988년 중반 그는 그단스크 조선소의 파업을 촉발했고, 파업과 정치적 논의가 누적된 끝에 정부는 1989년 2월부터 4월까지 원탁회의에 나섰다. 바웬사는 이 협상에서 비정부 측의 비공식 지도자였다. 회담 결과 연대의 합법적 재건과 부분 자유선거가 합의되었고, 그의 이름을 내건 후보들이 1989년 6월 선거에서 승리했다. 1983년 노벨 평화상은 그가 당국의 입국 거부를 우려해 직접 받지 못하고 아내 다누타가 대리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