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트 니콜라예비치 예프레모프

Леонид Николаевич Ефремов
소련 러시아 1912–2007 ○ 자연사

고르바초프에게 스타브로폴을 넘겨주고 그를 배신자라 부른 당원

은퇴 후 그는 『배신자 고르바초프』라는 회고록에서, 자신이 스타브로폴에서 길을 열어준 후임자를 향해 "양면적인 자들의 동맹"이라 쏘아붙였다.

농업기계화 기술자로 출발한 예프레모프는 전시 항공공업과 쿠이비셰프 당 기구를 거쳐 흐루쇼프 시기 쿠르스크·고리키·스타브로폴 당 조직을 차례로 이끈 지역 간부로 성장했다. 전성기에는 CPSU 상임위 후보위원과 중앙위 러시아공화국 뷰로 제1부의장을 지내며, 연방 구조 안에서 러시아 공화국을 별도 관리하려는 당 구도 중심에 섰다. 흐루쇼프 실각 후 스타브로폴로 되돌아갔고, 1970년 그 자리를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넘겨준 것이 가장 역사적인 순간이 되었다. 훗날 그는 회고록 『배신자 고르바초프』에서 후임자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후 18년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제1부의장으로 일하다 1988년 연방급 연금생활자로 물러났다.

경력 연표

『배신자 고르바초프』 — 후임자를 향한 퇴직 관료의 준열한 고발

예프레모프에게 역사적 아이러니는 퇴직 후에야 완성되었다. 1964년 스타브로폴 지방당 제1서기로 부임해 1970년 모스크바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자리를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물려준 그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는 모습을 연금 생활자 신분으로 지켜보며 분노가 쌓여갔다. 1996년 마침내 스타브로폴에서 『배신자 고르바초프: 양면적인 자들의 동맹, 야코블레프의 독배』(Ренегат Горбачёв. Альянс двурушников. Ядовитая чаша Яковлева)를 출간했다.

이 회고록에서 예프레모프는 고르바초프를 단순한 정치적 반대자가 아니라 소련 체제 자체를 배신한 '배신자(ренегат)'로 규정하고, 고르바초프와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의 동맹을 소비에트 국가를 해체로 몰아간 '양면적인 자들의 동맹'으로 묘사했다. 제목에 등장하는 '독배'라는 표현은 개혁의 언어로 위장한 파괴적 이데올로기라는 그의 시각을 압축한다.

이 책은 예프레모프가 이후 발표한 일련의 회고록인 『투쟁과 노동의 길에서』(1998), 『대승리를 생각하는 재향군인의 회고』(1998), 『우리는 10월에서 왔다』(2001)의 출발점이 되었다. 자신이 길을 열어준 인물이 소비에트 연방을 끝장냈다는 노인의 분노와 무력감이 1990년대 출판 붐 속에서 한 권의 복수극으로 응축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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