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충격요법의 설계자이자 체제전환의 상징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를 추구함으로써 기회의 창에 대비해야 한다.
폴란드 충격요법의 설계자. 1989년 마조비에츠키 내각의 재무장관 겸 부총리로 임명되어 '발체로비치 계획'을 주도했고, 초인플레이션을 진압하고 가격 자유화와 통화 태환을 단행하며 동구권 최초의 급진적 시장 개혁을 실행했다. 개혁은 폴란드를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로 전환시켰으나 20%의 GDP 하락과 대량 실업을 동반했고, '발체로비치는 물러가라'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격렬한 사회적 반발을 낳으며 1989년 체제전환의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89–1991 경제·재정·계획 · 폴란드
경력 연표
- 1970SGH 바르샤바 경제대학 졸업
- 1978–1980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연구원, 비공식 개혁팀 주도
- 1980년대연대노조 경제 고문
- 1989–1991부총리 겸 재무장관, 발체로비치 계획 실행
- 1995–2000자유연합당 당수
- 1997–2000부총리 겸 재무장관(2차)
- 2001–2007폴란드 국립은행 총재
- 2007–현재시민개발포럼(FOR) 창립·이사장
관련 역사 사건
인민폴란드 시기의 당원·개혁경제학자 이력
발체로비치는 1970년 바르샤바 계획통계주요학교(현 SGH 바르샤바 경제대학) 대외무역학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연구·교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1974년 미국 뉴욕 세인트존스대학에서 MBA를, 1975년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9년 집권 폴란드통일노동자당(PZPR)에 입당했으나 1981년 계엄령 선포를 계기로 탈당했다. 이 시기 그는 체제 내부의 개혁경제학자였다.
1978~1980년 그는 표트르 야로셰비치 총리 직속 경제자문단을 이끌며 에드바르트 기에레크의 경제정책이 곧 파탄에 이르리라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시장화와 산업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1978~1980년에는 당 중앙위 산하 마르크스-레닌주의 기초문제연구소에서 사회주의 경제의 시장화 문제를 연구했다. 1978~1981년에는 대안적 경제개혁안을 마련한 학자 집단을 이끌었고, 1980~1981년에는 독립 자치노조 '연대'(Solidarność)의 경제 전문가로 활동하며 계획경제에서 노동자 자치에 기초한 경제로 이행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 경력은 1989년 이후의 급진 개혁자 이미지와 대비된다. 그는 1989년 2~4월 PZPR과 야당 사이의 원탁회의에 참여했고, 그해 9월 마조비에츠키 정부의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들어가 개혁을 주도했다. 즉 시장화 구상은 체제 밖 반대운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개혁을 요구하다 좌절한 당내 개혁경제학자와 '연대' 자문 경험의 연장선에서 제도적 기회를 만나 실현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