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해방' 그룹을 조직하고 멘셰비즘의 기원에 선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그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고 말했을 때 동료 유형수들의 반응은 이랬다: '내가 마호메트의 추종자라고 선언했더라도 그들은 이보다 더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로드니키로 출발하여 '검은 재분할'을 거친 후 1883년 스위스에서 플레하노프·자술리치 등과 함께 러시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조직 '노동 해방' 그룹을 창립했다. 조직의 실무자로서 불법 출판물의 간행과 러시아 밀반입을 총괄했으며, 1884년 독일에서 체포되어 러시아에 인도된 후 13년간 카라 강제노동형을 복역했다. 1901년 탈출 후 《이스크라》 편집진에 합류하고 RSDLP 제2차 대회에서 멘셰비키로 서서 당 분열의 한 축을 형성했으며, 말년에는 회고록 《반세기》(За полвека)로 러시아 혁명운동사의 1차 사료를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74키예프 나로드니키 서클 가입
- 1877치기린 음모 조직
- 1879'검은 재분할' 당원
- 1883제네바에서 '노동 해방' 그룹 공동 창립
- 1901–1903《이스크라》 편집진
- 1903RSDLP 제2차 대회 멘셰비키 대표
- 1911–1916뉴욕에서 《스보보드노예 슬로보》 발행
- 1917플레하노프와 《예딘스트보》 편집
카라 유형수들의 공동생활과 연대
데이치는 카라 유형수들의 일상을 개인 회고의 소재로만 다루지 않고, 수감자들이 함께 운영한 공동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을 기록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공동체의 대표(староста)는 투표로 선출되었고, 방마다 제출된 안건은 서면으로 찬반을 물어 결과를 알렸다. 수감자들은 요리·청소·목욕탕 관리 같은 일을 돌아가며 맡았으며, 다섯 명씩 한 조를 이루어 일주일 단위로 취사를 담당했다. 식량이 부족해 식단을 조정하고, 각 방의 분배 담당자가 음식과 선물을 공평하게 나누었다. 도서관은 선출된 사서가 관리했고, 죄수들은 방마다 책과 신문을 돌려 읽었다.
그는 또한 수감자들이 검열된 공식 우편의 한계를 넘어 비밀 연락망을 만들어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회고했다. 감옥 직원의 도움이나 다른 방법으로 금지된 출판물을 들여오고, 여성 감옥 및 시베리아 각지의 유형수들과 소식을 교환했다. 카라에서의 공동생활은 단순한 생존의 협력이 아니라, 강제 수용과 감시 속에서도 공동 규칙과 상호부조를 유지하려는 정치범들의 실천이었다. 이 서술은 회고록에 담긴 데이치의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