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 후방을 휘저은 기병 지휘관, 모스크바 앞에서 전사한 소련 영웅
비텝스크현 호티노에서 태어나 1924년 붉은 군대에 들어가 기병 장교가 되었고, 군사 아카데미 재학 중 스페인 내전에 파견되었다. 1941년 8~9월 기병 집단을 이끌고 스몰렌스크 지방의 독일군 후방을 습격했고, 이 집단은 11월 제3기병군단을 거쳐 제2근위기병군단이 되었다. 모스크바 반격 중이던 1941년 12월 19일 루자 부근 팔라시키노 공격에서 기관총에 맞아 전사했고 사후 소련 영웅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24–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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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1941
군사·지휘
경력 연표
- 1924.09붉은 군대 입대
- 1936.05프룬제 군사 아카데미 입학, 재학 중 스페인 내전 파견
- 1941.08제29군 작전 기병 집단 사령관, 스몰렌스크 지방 후방 습격
- 1941.09.11소장
- 1941.11.20제3기병군단장(11월 26일 제2근위기병군단)
- 1941.12.19팔라시키노 공격 중 전사
- 1941.12.21사후 소련 영웅
볼로콜람스크 방어: 제316사단·카투코프 여단과 나란히
도바토르는 미하일 카투코프의 부하가 아니었다. 1941년 10월 하순부터 11월 말까지 그의 기병 집단은 콘스탄틴 로코솝스키의 제16군 안에서, 이반 판필로프 소장의 제316소총사단과 카투코프의 전차여단(11월 11일부터 제1근위전차여단)과 함께 볼로콜람스크에서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길목을 지켰다. 세 지휘관은 서로 이웃한 구역을 맡아 나란히 싸운 사이였다.
11월 16일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향한 공세를 다시 시작했을 때, 첫 타격은 제316사단과 도바토르 기병 집단의 접합부에 떨어졌다. 그 뒤 두 주 동안 제16군은 제1근위전차여단의 엄호를 받으며 이스트라 저수지 너머로 물러났다. 그사이 도바토르의 집단은 11월 20일 제3기병군단으로 개편되었고, 26일 근위 칭호를 받아 제2근위기병군단이 되었다.
카투코프의 아내 예카테리나 카투코바는 회고록 『기억에 남는 것들』(2002)에서 이 무렵 나란히 선 세 부대를 옛 러시아 동화 속 세 용사에 견주었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11월 하순 제316사단(이 무렵 제8근위소총사단)과 도바토르의 군단이 물러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전차여단은 제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카투코프가 도우라고 보낸 표트르 몰차노프의 전차에 도바토르는 다가오는 독일 전차 네 대를 없애라는 임무를 주었고, 몰차노프가 매복해 가까운 거리에서 쏘아 맞히는 동안 기병들은 손실 없이 물러났다.
도바토르는 12월 19일 반격 중에 전사했고, 앞서 11월에 전사한 이반 판필로프 곁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