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보좌검사에서 소련 사법부 수장으로, 정치재판을 주재한 최고재판소장
1966년 2월, RSFSR 최고재판소장 스미르노프는 가명으로 서방에 소설을 발표한 두 작가에게 반소비에트 선동·선전 혐의로 7년과 5년의 강제노동형을 직접 선고했다.
레닌그라드대학 법학부 출신으로 1934년 검찰에 투신,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루덴코 소련 수석검사의 보좌관으로 나치 점령지 전쟁범죄 공소를 담당하고 도쿄재판에서 소련 대표단 부검사를 지냈다. 1962년 RSFSR 최고재판소장이 되어 시냡스키-다니엘 재판을 직접 주재했으며, 1972년부터 12년간 소련 최고재판소장으로 재임하며 브레즈네프 시대 사법부를 대표했다. 국제법정에서 파시즘을 기소한 법률가가 국내에서는 정치범을 단죄하는 소련 법조계의 이중적 성격을 체현한 인물이다.
경력 연표
- 1934–1941레닌그라드·무르만스크 검찰청 수석수사관, 레닌그라드 전선 군검찰 수사관
- 1942–1946소련 검찰청 특별중요사건 수사관, 뉘른베르크 재판 소련 수석검사 보좌관
- 1946–1948도쿄 극동국제군사재판 소련 대표단 부검사
- 1949하바롭스크 재판(일본 세균전) 국가공소인
- 1957–1962소련 최고재판소 부소장
- 1962–1972RSFSR 최고재판소장
- 1972–1984소련 최고재판소장
- 1976–1986CPSU 중앙위원회 위원
시냡스키-다니엘 재판 (1966년 2월)
1965년 9월, 작가 안드레이 시냡스키와 율리 다니엘이 체포되었다. 시냡스키는 아브람 테르츠, 다니엘은 니콜라이 아르자크라는 필명으로 서방에 풍자 소설을 발표해온 사실이 KGB에 의해 적발된 것이다. RSFSR 최고재판소장 레프 스미르노프가 직접 재판장을 맡은 이 재판은 1966년 2월 10일부터 14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스미르노프는 두 작가에게 소련 형법 제70조(반소비에트 선동·선전) 위반을 적용해 시냡스키에게 7년, 다니엘에게 5년의 엄중한 노동교화소형을 선고했다.
이 재판은 순수한 문학 창작물만으로 유죄가 선고된 최초의 소비에트 정치 재판이었다. 시냡스키는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했는데: 소비에트 정치 재판에서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재판의 충격은 즉각적이었다: 재판을 방청한 60여 명의 소비에트 작가·지식인들은 스미르노프의 엄중한 태도와 판결에 경악했고, 알렉산드르 긴즈부르크는 재판 속기록을 정리한 백서를 사미즈다트로 편집·유포했다가 후에 체포되었다. 역사가 프레드 콜먼은 이 재판을 두고 "현대 소비에트 반체제 운동의 탄생"이라 평했다.
재판장 스미르노프는 이 재판을 통해 흐루쇼프 해빙기 이후 소련 당국이 '이데올로기적 공존'에 선을 긋는 상징적 행위를 수행했다. 불과 20년 전 뉘른베르크에서 파시즘을 기소했던 그가 이제 창작의 자유를 정치범죄로 단죄하는 재판장이 된 것은, 전후 소비에트 법조계가 걸어온 길을 응축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