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작업장 노동자를 이끌고 바스티유 광장에서 6월 봉기의 신호를 올린 블랑키파 선동가
1822년 생지롱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프리카 기병대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2월 혁명 뒤 제대해 파리로 올라왔고, 국립 작업장 제12구의 구호 분배 책임자가 되었다. 블랑키의 중앙 공화협회 간부로 활동했고 5월 15일 의회 난입에도 가담했다. 6월 22일 국립 작업장 노동자 대표단의 대변인으로 행정위원회의 마리 장관과 격돌했고, 23일 아침 바스티유 광장에서 군중에게 맹세를 받은 뒤 생드니 거리의 첫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체포되어 군사 법정에서 유형을 선고받았으나 사면되었고, 스페인·런던을 거쳐 1858년 뉴욕으로 건너갔다. 남북전쟁 때 북군 대령이 되었고, 1866년 후아레스파에 무기를 나르다 난파로 죽었다.
다른 이름: 루이 페르디낭 퓌졸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48국립 작업장 제12구 구호 책임자
- 18486월 봉기의 신호를 올림
- 1858뉴욕 이주
- 1861–1865북군 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