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으로 폐위되고 재판받은 프랑스 국왕
1774년 즉위한 프랑스 국왕으로 재정 위기 속에서 1789년 삼부회를 소집했다. 1791년 헌법을 받아들였지만 바렌 도주와 대외전쟁 속에서 왕실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1792년 왕권이 정지되고 국민공회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1793년 1월 처형됐다.
혁명기의 선택과 정치적 맥락
루이 16세가 삼부회를 소집한 것은 왕실이 재정 위기를 기존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자들이 국민의회로 전환하고 특권·과세·주권을 재구성하면서, 소집은 왕권을 회복하는 수단이 아니라 혁명의 출발점이 됐다. 왕이 1791년 헌법을 받아들인 사실은 갈등의 종결이 아니라 제한된 군주제를 둘러싼 불안정한 타협이었다.
바렌 도주는 왕이 헌법 질서 안에서 행동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전쟁과 1792년 봉기 뒤 국민공회는 왕정을 폐지하고 그를 재판했다. 이 재판은 개인의 유죄 여부뿐 아니라 주권이 왕에게 있는가 국민에게 있는가를 두고 벌어진 정치적·헌법적 충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