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핀테른을 이끈 볼셰비키, 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와 함께 총살되다
모든 것을 말했다, 어떤 관대함도 바라지 않는다. 완전한 복권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러나 언젠가 내 무죄가 밝혀지거든 사후에 당적을 회복시키고 신문에 복권 소식을 실어 달라.
예카테리노슬라프 현의 유대인 멜라메드 집안에서 태어나 1901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1905년 혁명 참가와 유형을 거쳐 파리로 망명, 프랑스 노동조합 운동에서 활동했다. 1921년부터 1937년까지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프로핀테른) 사무총장으로 국제 노동운동의 좌파 축을 조직했다. 1939년 외무부인민위원, 전시에는 소빈포름뷰로를 이끌며 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를 감독했다. 1949년 체포되어 1952년 JAC 재판에서 법정 자백을 철회하고 기소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으나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되었다. 1955년 복권.
경력 연표
- 1901–1908RSDLP 입당, 카잔에서 1905년 혁명 참가, 체포·유형 후 해외 탈출
- 1909–1917파리 망명, 프랑스 사회당과 노동조합 운동에서 활동
- 1918–1921전러시아 섬유노조·철도노조·모스크바 주 노조평의회 책임자
- 1921–1937프로핀테른(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 사무총장
- 1937–1939국립문학출판사(고슬리티즈다트) 소장
- 1939–1946소련 외무부인민위원(부장관)
- 1941–1948소빈포름뷰로 부책임자(1941–1945), 책임자(1945–1948)
- 1949–1952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 사건으로 체포, 재판, 총살
관련 역사 사건
1941년 가을, 소빈포름뷰로의 브리핑 단상에서
솔로몬 로조프스키는 1901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한 고참 혁명가로, 망명지 파리에서 노동조합 운동을 조직했고 혁명 후에는 국제 노동운동의 붉은 축을 세우는 일에 반평생을 바쳤다. 1921년부터 1937년까지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프로핀테른)의 총서기로서 수십 개 나라의 좌파 노조를 하나의 국제 조직으로 묶었고,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이론가이자 조직가로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 손꼽히는 노동운동 전문가였다. 1939년에는 외무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이 되었다.
전쟁은 그에게 새로운 단상을 주었다. 1941년 6월 창설된 소비에트정보국(소빈포름뷰로)의 부국장으로서 그는 모스크바와 쿠이비셰프에서 외국 특파원들을 상대로 정례 브리핑을 열었다. 독일군이 모스크바 코앞까지 진격한 1941년 가을의 가장 어두운 몇 주 동안, 노련하고 침착하며 때로 신랄한 그의 브리핑은 소련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계 언론에 전하는 통로였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는 소빈포름뷰로 국장을 지냈다.
그의 감독 아래 1942년 유대인반파시스트위원회(JAC)를 비롯한 여러 반파시스트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미헤일스가 이끈 JAC의 미국 순회는 소련의 전쟁 수행을 위한 거액의 연대 기금을 모았고, 세계 여론을 반파시즘 전선으로 묶는 데 기여했다. 전쟁 승리에 바친 이 사업이 몇 해 뒤 그를 파멸시키는 죄목으로 뒤바뀌리라는 것을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1952년 여름, 법정에서의 마지막 변론
1948년 말 유대인반파시스트위원회가 해산되고 전후 반유대주의 캠페인이 본격화되면서 로조프스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1949년 1월 그는 당에서 제명되고 체포되었다. 크림반도에 유대인 공화국을 세워 미국에 넘기려 했다는 등의 혐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이었고, 3년에 걸친 수사 동안 칠십 대의 그에게서 자백이 짜내어졌다.
1952년 5월부터 7월까지 군사법정에서 열린 비공개 재판에서 로조프스키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그는 법정에서 자백을 전면 철회하고, 며칠에 걸친 진술을 통해 기소장의 논리를 조목조목 해체했다. 반세기 당력의 노혁명가가 기억과 논리만으로 사건 전체가 허구임을 입증해 가는 이 변론은 함께 기소된 피고인들까지 용기 내어 자백을 철회하게 만들었다. 재판장 체프초프조차 사건의 재수사를 상부에 요청했으나 기각되었다. 1952년 7월 18일 사형이 선고되었고, 8월 12일 로조프스키는 시인 페레츠 마르키시, 다비트 베르겔손, 레이프 크비트코 등과 함께 총살되었다. 이날은 「살해된 시인들의 밤」으로 기억된다.
1955년 11월 소련 군사법정은 사건 전체가 조작임을 인정하고 피고인 전원을 복권했다. 1990년대에 공개된 재판 기록은 로조프스키의 변론을 온전히 담고 있으며, 루벤스타인과 나우모프가 편집한 영역본으로 출판되었다. 조작된 법정에서조차 논리와 존엄을 무기로 싸운 그의 마지막 나날은, 전후 반유대주의 캠페인이라는 어두운 장 안에서 가장 빛나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