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백화제방, 백가쟁명」 보고를 한 중앙선전부장, 문화대혁명의 첫 표적 가운데 하나
장쑤 우시 출신으로 난양공학에서 전기공학을 배우던 1925년 공산당에 들어갔고, 대장정 때 《홍성보》를 편집했다. 1942년 《해방일보》 총편집, 1943년부터 중앙선전부장을 맡아 당 언론의 원칙을 세웠다. 1956년 4월 정치국 회의에서 학문과 예술의 자유 토론을 제안했고 5월 26일 화이런탕에서 「백화제방, 백가쟁명」 보고를 했으며, 8대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어진 반우파 투쟁과 여러 비판 운동도 그의 부서가 이끌었다. 1959년 부총리, 1965년 문화부장이 되었으나 1966년 5월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직무가 정지되어 13년을 갇혔다. 1979년 복권되어 정협 부주석이 되었고, 만년에 1인 지배와 학문의 계급투쟁화를 비판했다.
다른 이름: 육정일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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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1996
중국공산당대표
정치·당 지도- 중앙선전부장1943–1966이념·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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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1966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국무원 부총리·문화부장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925난양공학 재학 중 공산당 입당
- 1928–1930모스크바에서 청년단의 코민테른 대표
- 1934대장정 중 《홍성보》 편집
- 1942《해방일보》 총편집
- 1943–1966중앙선전부장(1952~1954 공백)
- 1956「백화제방, 백가쟁명」 보고, 정치국 후보위원
- 1959국무원 부총리
- 1965문화부장
- 1966실각, 1968년 친청 감옥으로 이감
- 1979복권, 정협 부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