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정상화' 내각을 이끈 후사크의 오른팔
정치적 패배의 이유를 묻자, 슈트로우갈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반체제 인사들을 과소평가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정치인으로, 1970년 1월 올드르지흐 체르니크를 대신해 총리에 오른 뒤 18년간 '정상화' 내각을 이끌었다. 법학을 전공하고 농업장관과 내무장관을 거친 당 관료였으며, 프라하의 봄 시기 부총리를 지내다 소련 침공 후 후사크의 반개혁 노선에 합류했다. 19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며 강경파 야케시 당 총서기와 충돌해 실각했고, 벨벳 혁명 후 KSČ에서 제명되었다. 말년에는 국경 사망 사건으로 기소되었으나 치매로 중단된 채 2023년 98세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70–1988 정부·행정 · 체코슬로바키아
경력 연표
- 1924베셀리나트루주니치 출생, 부친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한 공산주의자
- 1945~48KSČ 입당, 카렐대학교 법학 졸업
- 1959~61농업·임업·수자원 장관
- 1961~65내무장관, 국가보안(StB) 관할
- 1968체르니크 내각 부총리 겸 경제위원회 의장
- 1968.11~70.1KSČ 중앙위 서기·상임위원, 후사크의 '정상화' 노선 합류
- 1970.1~88.10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총리, 18년 재임
- 1988~90야케시와 충돌 후 사임, 벨벳 혁명 후 KSČ 제명
관련 역사 사건
1968년 침공 전야: 회의적 동조에서 반개혁 전환까지
루보미르 슈트로우갈은 1960년대를 당료와 정부를 오가며 보냈다. 1965년부터 당 중앙위 서기로 일했고, 프라하의 봄이 무르익던 1968년 4월 올드르지흐 체르니크 내각의 부총리 겸 경제평의회 의장이 되었다. 1968년 8월 바르샤바 조약군의 침공 당시 그는 부정적 입장을 취했고, 체르니크가 소련군에 연행되어 모스크바 협상에 끌려간 동안 총리 직무를 대행했다. 이 때문에 항복 문서인 이른바 '모스크바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반면, 체르니크는 연행된 다른 지도부와 함께 서명했다. 체르니크 부재중의 내각은 침공 반대 성명과 실무 조치를 잇달아 채택했다.
그러나 그는 개혁 노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 1968년 11월부터 당 중앙위 주석단 위원이자 체코 지역 당 사업을 지도하는 당 중앙위 비서국 의장을 맡아 권력의 핵심부로 들어갔고, 1969년 8월 침공 1주년 시위를 둘러싼 탄압에서도 체르니크와 나란히 후사크를 공개 지지하며 개혁 진영과 거리를 두었다. 1969년 9월 체르니크가 자기비판 끝에 자리에서 밀려나자 1970년 1월 그를 대신해 총리가 되었다. 공식 정부 인명록은 이 시기를 두고 그가 1968~1969년 중도적 입장을 취했으며 점차 '정상화' 세력의 강령으로 옮겨갔다고 정리한다. 개혁파로 분류된 체르니크가 1970년 말 제명된 것과 달리, 슈트로우갈은 같은 시기 체르니크가 세운 개혁의 동지들을 권력에서 축출한 반개혁 내각의 수반이 되어 이후 20년 가까운 '정상화'의 얼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