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베를린 봉쇄에 공수로 맞서 324일을 버텨낸 미군 지구 군정장관
봉쇄 하루 만인 1948년 6월 25일, 클레이는 트루먼의 공식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공수 작전을 스스로 명령했고, 살아남은 베를린 시민들은 그를 '도시의 아버지'라 부르며 무덤에 '우리 자유의 수호자'라는 감사 비문을 새겼다.
그루지야 출신의 공병 장교로, 전시 보급 지휘로 두각을 나타낸 뒤 1947년 점령 독일 미군 지구 군정장관이 되었다. 1948년 소련이 서베를린을 봉쇄하자 무력 호송대 대신 공수를 택해 직접 명령을 내렸고, 베를린 방위가 곧 미국의 명예이자 서유럽의 운명이라고 주장하며 324일의 공수를 끝까지 이끌었다. 1949년 퇴역한 뒤 사업가와 역대 대통령의 고문을 지냈고, 1961년 베를린 장벽 위기 때 케네디의 특사로 돌아와 체크포인트 찰리의 미군 전차를 소련 전차와 대치시켰다.
경력 연표
- 1897그루지야주 메리에타에서 알렉산더 스티븐스 클레이 상원의원의 아들로 출생
- 1918웨스트포인트 졸업, 공병 장교로 임관
- 1942최연소 준장으로 승진, 아이젠하워 휘하 물자국장
- 1945–1946아이젠하워 부관, 독일 연합군 정부 부군정장관
- 1947–1949미군 지구 군정장관 겸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
- 1948.06.25베를린 공수 작전 개시 명령
- 1949–1962퇴역, 컨티넨털 캔 사 회장
- 1961–1962케네디의 베를린 특사, 체크포인트 찰리 미소 전차 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