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우스 D. 클레이

Lucius D. Clay
미국 미국 1897–1978 ○ 폐기종 · 80세

서베를린 봉쇄에 공수로 맞서 324일을 버텨낸 미군 지구 군정장관

봉쇄 하루 만인 1948년 6월 25일, 클레이는 트루먼의 공식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공수 작전을 스스로 명령했고, 살아남은 베를린 시민들은 그를 '도시의 아버지'라 부르며 무덤에 '우리 자유의 수호자'라는 감사 비문을 새겼다.

그루지야 출신의 공병 장교로, 전시 보급 지휘로 두각을 나타낸 뒤 1947년 점령 독일 미군 지구 군정장관이 되었다. 1948년 소련이 서베를린을 봉쇄하자 무력 호송대 대신 공수를 택해 직접 명령을 내렸고, 베를린 방위가 곧 미국의 명예이자 서유럽의 운명이라고 주장하며 324일의 공수를 끝까지 이끌었다. 1949년 퇴역한 뒤 사업가와 역대 대통령의 고문을 지냈고, 1961년 베를린 장벽 위기 때 케네디의 특사로 돌아와 체크포인트 찰리의 미군 전차를 소련 전차와 대치시켰다.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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