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무트 아흐메토비치 가레예프

Махмут Ахметович Гарее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계 타타르인 1923–2019 ○ 자연사

전쟁 경험을 군사이론으로 조직한 참모장군

1989년 철수 뒤에도 그는 카불에 남아 나지불라 정부의 전쟁 수행을 자문했다.

마흐무트 가레예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 경험과 참모 업무를 바탕으로 소련군의 작전·교육 체계를 다듬은 군사이론가이자 고위 지휘관이었다. 그는 총참모부 과학·작전 부문에서 군사과학과 훈련을 담당하며 전쟁을 분석하는 실천적 방법을 발전시켰다. 1989년 2월 소련군 철수 뒤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모하마드 나지불라의 수석 군사고문으로 남아, 소련의 원조가 이어지는 동안 정부군 작전과 군사 자문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회고록과 연구서에서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소련의 전쟁 경험을 군사적·정치적 교훈으로 해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5년 이후의 실천과 전쟁사 연구

1944년 6월부터 가레예프는 제3벨라루스 전선의 제45소총군단 작전부에서 일했고, 1945년 2월부터는 선임 장교로 제5군 참모부에 배속되었다. 쾨니히스베르크 공략전에서 부상을 당하고도 대열을 떠나지 않았으며, 도시 함락 뒤 제5군은 제1극동전선으로 옮겨 1945년 9월 2일 일본의 항복까지 싸웠다. 그는 4차례 부상과 뇌진탕을 겪고 5개의 전투 훈장을 받은 소령으로 전쟁을 마쳤다. 종전 직후 그는 제5군 참모부에 남아 1945년 12월 일본군 포로수용소 감독 책임자가 되었고, 1946년 10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작전부에서 전쟁 경험을 연구하는 선임 장교로 일했다.

이 실전 기록은 훗날 그의 군사이론 작업의 원료가 되었다. 그는 이미 1960~1970년대에 군사과학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100편이 넘는 논저와 300편이 넘는 논문·기고를 남겼고, 여러 소련군 교범의 주필을 맡았으며, 만년에는 200권이 넘는 책과 연구물의 저자로 집계되었다. 소련 붕괴 뒤에도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1995년 2월 민간 연구단체인 러시아 군사과학아카데미가 창설되자 초대 회장에 선출되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고, 대조국전쟁사 연구와 전쟁사 왜곡 반대를 주요 과제로 삼았다. 그가 편집한 학술 선집들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수천 건의 전쟁 문서를 공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9월에는 1945년 무단장 일대 전투에서 일본 제국에 맞선 공로로 중국의 훈장을 받았다. 즉 전시 참모 장교에서 출발한 경험이 전후 전쟁사 연구와 군사이론의 조직화로 이어진 셈이며, 그는 이 작업을 소련과 그 후신 국가의 군사적·정치적 교훈을 정리하는 일로 여겼다. 2019년 12월 25일 사망한 뒤 그는 연방군사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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