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와 원자력 산업을 잇는 생산 관료
1939년, 스탈린의 호출에 트럭이 두 번 펑크 나 1시간 30분 늦었다. '콜롬나에서 트베리 경유로 오셨나?'라는 빈정거림에 서른일곱 살 공장장은 '기술도 사람이 못 따라가면 배신합니다'라고 답했다. 중기계 인민위원 임명을 사양하자 보로실로프가 팔을 붙잡았다: '모루 위의 보드카는 어디 갔나?'
스탈린 시대 소련 군수공업의 핵심 기술관료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차공업 인민위원으로서 T-34의 대량생산 체계를 지휘했으며, 전후에는 소련 원자력 산업 전체를 관장하는 중형기계공업부 초대 장관을 지냈다. 기관차 설계사에서 출발해 전차, 조선, 핵무기,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소련 군수-기술 행정의 정점을 두루 거친 '스탈린의 인민위원' 세대의 전형이었다.
경력 연표
- 1930s기계공업과 전차공업 행정에서 성장
- 1941–1945전차공업 인민위원, T-34 등 전시 전차생산 총괄
- 1945–1953수송기계·중형기계공업 지도부, 군수와 원자력 행정의 접점에 있음
- 1953–1957중형기계공업 장관, 원자력·미사일 산업 행정에 관여
- 1957젊은 생산 관료 세대의 핵심 인물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원자폭탄 개발과 방사선병
말리셰프는 1945년 11월 30일 소련 원자폭탄 개발을 총괄하는 특별위원회 산하 공학기술평의회에 합류하여, 우라늄 농축을 위한 제813공장(현 우랄전기화학콤비나트) 건설을 감독하는 제2분과를 이끌었다. 이 공장은 핵무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 생산의 핵심 시설이었다. 페르부힌, 반니코프, 자베냐긴과 함께 분과의 과학·공학 인력을 충원하는 임무도 맡았다. 1951년에는 우라늄 농축용 확산기계 생산 조직의 공로로 스탈린상 1등급을 받았다. 1953년 6월, 소련 원자력 산업 전체를 은폐 명칭으로 관장하는 중형기계공업부의 초대 장관에 임명되어 핵무기 개발과 원자력 인프라를 총괄했다. 같은 해 8월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에서 진행된 소련 최초의 수소폭탄 RDS-6s 실험 현장을 시찰했으며, 4년 뒤인 1957년 2월 20일 급성 방사선증후군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크렘린 벽 묘지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