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로 페르난데스 폰트

Marcelo Fernández Font

7월 26일 운동 전국 조정관에서 국립은행 총재가 되어 은행의 역할을 두고 게바라와 논쟁한 쿠바 경제 관료

카르데나스에서 태어나 아바나 대학 공학도로 반바티스타 학생 투쟁에 나섰다. 1956년 7월 26일 운동에 들어가 전국 선전 책임자가 되었고, 1958년 1월 체포된 아르만도 아르트를 대신해 혁명이 이길 때까지 운동의 전국 조정관을 지냈다. 혁명 뒤 국립은행 부총재(1961~1963)와 총재(1963~1964)를 거쳐 1964~1980년 대외무역부 장관을 지냈고, 1965년부터 1980년까지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이었다. 1964년 「쿠바 사회주의 은행의 발전과 기능」으로 대논쟁에 참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1964년, 사회주의 은행의 역할을 두고 게바라와 논쟁하다

국립은행 총재로서 페르난데스 폰트는 1964년 『쿠바 소시알리스타』에 「쿠바 사회주의 은행의 발전과 기능」을 실었다. 경제 계산제 아래에서 기업은 은행에 제 자금을 두고 은행 신용을 받아 쓰며, 은행은 신용과 결제를 통해 기업 활동을 통제한다. 페르난데스 폰트는 이런 은행의 역할을 옹호했다.

게바라는 같은 해 「은행, 신용, 그리고 사회주의」로 답했다. 그가 운영하던 예산 재정 체계에서 기업은 제 자금도 은행 신용도 갖지 않고, 은행에 넣은 돈은 곧바로 국가의 것이 되었다. 게바라는 경제 계산제 기업과 은행의 관계가 자본주의 은행 앞에서 계획과 지불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사적 생산자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대논쟁을 정리한 1974년 바르셀로나판 해설은 이 논쟁을 국립은행의 역할을 둘러싼 「중요한 병행 논쟁」으로 꼽았다.

뒤에 페르난데스 폰트는 대외무역부 장관을 16년 동안 지냈다. 그의 저작 목록에는 『1963/1964년 쿠바 경제에 관한 대논쟁』이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