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 표도로브나 안드레예바

Мария Фёдоровна Андреева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러시아 1868–1953 ○ 자연사

레닌이 '동지 페노멘'이라 부른 배우 출신 볼셰비키 재정 요원

1903년, 고위 철도 관리의 아내 신분으로 1등석 열차 칸에 경찰이 쫓는 지하운동가를 숨기고 고리키에게 5월제 선전물을 실은 여행가방을 배달했다.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대표 여배우로 스타니슬랍스키의 무대 파트너였던 마리야 안드레예바는 1904년 볼셰비키에 입당한 후 당의 핵심 재정 요원으로 활약했다. 사바 모로조프의 유산 등 자본가들의 거액 헌금을 레닌의 금고로 연결하는 탁월한 자금 조달 능력으로 '동지 페노멘'이라는 당내 별칭을 얻었으며, 18년간 막심 고리키의 동반자로서 그의 문학 활동과 해외 선전 여행을 물질적·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 10월 혁명 후 페트로그라드 극장·공연 인민위원으로서 볼쇼이 드라마 극장을 공동 창립했고, 이후 모스크바 과학자회관 관장으로 18년간 봉직하며 혁명기 문화 제도 건설에 헌신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1917년 이후의 극장 행정과 문화 사업

1917년 2월 혁명 뒤 안드레예바는 국가두마 산하 시립극장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0월 혁명 직후 볼셰비키와의 관계가 잠시 멀어졌지만, 1918년 북부 코뮌의 극장·공연 인민위원이자 외무무역 인민위원부 전문가위원회 책임자로 일했다. 그해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레이디 맥베스를 연기했고, 공연의 성공을 계기로 막심 고리키, 표도르 샬랴핀, 유리 유리예프와 함께 혁명기에 고전 레퍼토리를 공연할 볼쇼이 드라마 극장 창립에 나섰다. 페트로그라드의 새 극장은 1919년 2월 15일 실러의 《돈 카를로스》로 개관했으며, 알렉산드르 블로크가 경영을 맡았다. 안드레예바는 1920년 페트로그라드 교육인민위원부 책임자가 되었고, 이듬해 정부의 문화 사절로 해외에 파견되었다. 임무에는 박물관 소장품과 몰수된 부르주아 저택에서 확보한 미술품의 국제 판매가 포함되었다. 1922년 베를린의 소련 무역대표단에서는 영화 관련 협상을 맡았다.

1926년 안드레예바는 다시 베를린으로 파견되어 소련 무역대표부 예술산업부서 책임자가 되었다. 러시아어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산업화에 필요한 외화를 마련하기 위해 몰수 재산과 박물관 소장품을 독일에서 매각했으며, 여기에는 에르미타주 등 박물관의 작품도 포함되었다. 이 서술은 매각 대상과 임무를 밝히지만, 그 자체로 매각의 세부 상황이나 법적 평가를 확정하지는 않는다. 귀국 시점은 출처에 따라 다르다. encyclopedia.com은 1930년 귀국했다고 서술하는 반면, 러시아어 위키백과는 1928년 귀국했다고 한다. 모스크바 과학자회관 관장 재임도 전자는 1930년부터로 읽히지만 후자는 1931~1948년으로 제시한다. 안드레예바는 이 회관을 이끌며 1948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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