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펠리 페레스-스타블

Marifeli Pérez-Stable
쿠바(출처 표기) 쿠바 1949–

쿠바 혁명을 연구한 쿠바계 미국 사회학자

1977년 12월 로우르데스 카살과 함께 안토니오 마세오 여단을 이끌고 쿠바를 방문했다. 55명이 참여한 이 방문은 쿠바계 이민자들과 쿠바 정부의 1978년 대화를 앞서는 것이었다.

마리펠리 페레스-스타블은 1949년 태어난 쿠바 출신 사회학자·역사가로, 11세 때 가족과 함께 쿠바를 떠났다.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에서 1985년 사회학 박사, 플로리다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쿠바 혁명: 기원, 과정, 유산』(옥스퍼드대 출판부, 초판 1993)의 저자이며 이 책의 시대 구분이 이 사전의 역사 서술에서 인용된다.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대학교 사회학 교수(현 명예교수)를 지냈고 2004~2009년 미주 대화의 민주적 거버넌스 담당 부회장을 맡았다. 쿠바인이라는 출신 표기는 출처에 따른 것으로, 미국 시민권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안토니오 마세오 여단과 1977~78년 쿠바 방문

페레스-스타블은 1970년대 중반 쿠바계 미국인 좌파 운동의 한 축이었다. 쿠바 이주민의 쿠바 방문을 추진하자는 제안은 1974년 쿠바연구소(Instituto de Estudios Cubanos)에서 로우르데스 카살이 처음 제기했고, 1977년 12월 22일 미국·멕시코·스페인에 흩어져 있던 쿠바 이주민 55명이 쿠바를 방문했는데 이들을 이끈 사람이 카살과 페레스-스타블이었다.

이들은 쿠바 이주민이 쿠바를 방문하고 쿠바 정부와 선린 관계를 맺을 권리를 요구했다. 여단은 반카스트로 활동에 가담하지 않은, 어릴 때 부모의 결정으로 쿠바를 떠난 사람들만 받아들였다. 2주간의 방문 기간에 이들은 환영 인파를 만나고 견학과 자원 노동에 참여했으며 가족을 만났다. 카스트로는 방문 뒤 해외 쿠바 이주민과의 대화를 제안했고, 그 대화는 정치범 석방과 이산가족 상봉, 쿠바 방문 제한 완화로 이어졌다. 여단은 첫 방문객들이 돌아온 뒤인 1978년에 공식 조직되었다.

이 여단은 쿠바 이주민 정치가 하나의 반공 보수 블록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냈고 쿠바계 미국인의 좌파 정치 참여 공간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이 방문은 반공 강경파의 비판을 불러 1979년 여단원 카를로스 무니스 바렐라가 푸에르토리코에서 암살되었고, 훗날 일부 여단원은 쿠바에 대한 기대에서 멀어졌다. 그녀 자신은 쿠바 혁명에 “20년에 조금 못 미치는” 기간 동조했으나 그 뒤로는 “훨씬 더 오랜 세월” 그 현상에 반대해 왔다고 말한다. 이는 본인의 자기 규정이며, 쿠바 국가안전보장국·CIA·FBI 어느 쪽의 요원도 아니라는 발언도 같은 맥락의 자기 변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