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정부의 질서 회복을 밀어붙인 에스에르 관료
「코르닐로프 장군은 사령부와 떠돌던 소문의 영향으로 자신을 겨냥한 예상 밖의 행동을 두려워했다」, 훗날 필로넨코가 조사위원회에 남긴 증언이다.
막심 필로넨코는 변호사 출신의 에스에르 정치인으로, 1917년 최고사령부 정부 위원으로서 코르닐로프·사빈코프와 함께 사형제 부활과 군율 강화를 밀어붙인 인물이다. 코르닐로프 봉기 국면에서는 케렌스키 편에 섰고, 10월 이후 반볼셰비키 지하활동에 참여했다가 망명해 변호사와 법학 교수로 활동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6–1913상트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 조선학과 수학
- 1914제1차 세계대전 참전, 근위 척탄병연대 소위
- 1917.06제8군 임시정부 комиссар
- 1917.07–08코르닐로프 휘하 최고사령관부 정부 комиссар
- 1917.08코르닐로프와 케렌스키 사이의 중재 시도, 이후 케렌스키 지지
- 1917–1918페트로그라드 반볼셰비키 지하조직 참여
- 1918–1919아르한겔스크 북부 지역 임시정부의 시의원
- 1933–1940브뤼셀대학교 로마법 교수
관련 역사 사건
모스크바 권력 구상과 반볼셰비키 지하활동
필로넨코의 반볼셰비키 노선은 코르닐로프 봉기 이전부터 뚜렷했다. 8월 13일 코르닐로프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것을 계기로 수도에서는 국가 권력 형태를 바꾸려는 구상들이 모색되었다. 한 초안은 코르닐로프를 의장으로 하는 '인민방위평의회'를 국가 수반으로 세우고 케렌스키를 부의장으로, 알렉세예프·콜차크·사빈코프·필로넨코를 평의회 구성원으로 하는 것이었고, 다른 초안은 케렌스키가 이끄는 소규모 군사내각(디렉토리)에 코르닐로프·사빈코프·필로넨코를 배치하는 것이었다. 필로넨코가 실제로 이런 기구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이 초안들은 그가 사빈코프와 함께 코르닐로프 진영에서 차지한 위치를 보여준다. 10월 혁명 이후 필로넨코는 페트로그라드의 반볼셰비키 지하조직에 참여했다. 볼로다르스키 암살 뒤 전(前) 에스에르 당원들이 인민위원회에 보낸 익명 서한은 필로넨코가 사빈코프·콜로소프 등과 함께 당·소비에트 간부를 겨냥한 일련의 테러를 준비했고,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 회의장 폭파까지 기도했다고 주장했다. 이 서한은 필로넨코의 사촌 레오니트 칸네기세르가 페트로그라드첵카 의장 모이세이 우리츠키를 사살한 행위와도 한 실로 연결되었다. 다만 역사학계는 이 '필로넨코 테러 조직' 버전에 신중하다. 역사가 겐리흐 이오페는 우리츠키 암살 시점(1918년 8월 말)에 필로넨코가 페트로그라드가 아니라 아르한겔스크의 북부 지역 임시정부 산하에 있었음을 지적하고, 칸네기세르 자신이 수사에서 '어떤 조직도 나에게 이 테러를 지시하지 않았고, 이는 개인적 행위'라고 진술했음을 들어 이 버전이 얕은 분석에도 견디지 못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