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파블로비치 카잔스키

Василий Павлович Казанский

기근 구호와 성물 수호 사이에서 교회를 이끈 수도대주교

“기근 구호를 위해 기부할 수 있지만, 성전의 성물은 건드리지 말라.”

러시아 정교회의 수도대주교이자 페트로그라드 교구의 지도자로, 혁명 뒤 교회의 교육과 신자 공동체를 재건한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 백색운동과 거리를 두면서도 국가가 교회의 자율성과 성물을 침해하는 데에는 맞섰다. 1922년 볼가 기근 때 성물이 아닌 교회 재산의 자발적 기부와 교회가 통제하는 구호를 제안했지만, 당국이 강제 몰수로 전환하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유죄 판결 뒤 처형되었고 1992년 러시아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22년 교회 재산 몰수와 페트로그라드 재판

1922년 볼가 기근에 대응한다며 당국이 교회 귀중품 몰수를 추진하자, 베냐민은 굶주린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교회 재산을 내놓는 데 반대하지 않았지만, 기부는 자발적이어야 하고 구호금 배분은 교구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3월 6일 기근 구호위원회와의 합의에 따라 자발적 기부금은 교구가 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스크바 당 지도부는 이 방식을 거부하고 몰수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페트로그라드의 사제들 가운데 일부는 성물을 내놓는 대신 같은 가치의 다른 재산을 제공하는 타협을 당국과 협의했다. 베냐민은 성물 자체를 지키려는 입장과 대중과 당국의 충돌을 막으려는 태도를 함께 보였으나, 교회 통치권을 새 행정부에 넘기려는 리노베이션파의 움직임에는 반대했다. 그는 알렉산드르 베베덴스키를 회개할 때까지 교회 밖에 있다고 선언했고, 이를 철회하라는 압박을 거부했다. 당국은 그를 가택 연금한 뒤 구금하고 재판에 회부했다. 두 주 동안 이어진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들은 피고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고, 증언으로 정부 측 주장이 약해지자 기술연구소의 예고로프 교수가 법정에서 체포되었다. 법원은 베냐민과 다른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7월 5일 베냐민을 포함한 열 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베냐민은 1922년 7월 31일 성직자인 줄 사격대가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시킨 채 처형되었다. 이 재판은 기근 구호의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교회 내부의 권위 다툼 및 국가의 교회 재산 몰수와 맞물린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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