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체르노프

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Чернов
소련 러시아 1891–1938 ✕ 처형

곡물조달에서 VDNKh까지, 2차 5개년 농업을 이끈 인민위원

1935년 2월 17일, 콜호스 충격노동자 대회에서 체르노프는 "1937년 모스크바에서 전연방농업전시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같은 날 스탈린과 몰로토프는 전시회 조직 포고령에 서명했다. 훗날 VDNKh의 출발이었다.

직공 가정 출신으로 1909년 멘셰비키로 시작해 1920년 볼셰비키에 합류했다. 곡물조달 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 1934년 야코프 야코블레프의 뒤를 이어 농업인민위원이 되었고, 콜호스 체제의 기술적 기반을 강화하는 제2차 5개년 계획 농정을 주도했다. 1935년 전연방농업전시회(VDNKh)를 제안해 조직 준비를 총괄했으며, 농업아르텔 모범정관 제정도 이끌었다. 1937년 체포되어 21인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 총살, 1988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연방농업전시회(VSKhV)와 VDNKh의 탄생

체르노프의 가장 오래 지속된 유산은 전연방농업전시회(VSKhV), 곧 오늘날의 VDNKh이다. 1935년 2월 17일, 제2차 전연방 콜호스 충격노동자 대회 마지막 날, 체르노프는 농업아르텔 모범정관 초안에 관한 보고를 한 자리에서 "1937년 모스크바에서 전연방농업전시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대회는 만장일치로 이를 지지했고, 같은 날 스탈린과 몰로토프의 서명으로 전시회 조직에 관한 소련 인민위원회의 및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포고령이 발표되었다.

1935년 8월 17일, 전시회 건설과 조직을 총괄할 전시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체르노프가 그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모스크바 북부 오스탄키노 인근 136헥타르 부지에 건설될 전시장의 기획을 주도했다. 1936년 4월 21일 소련 인민위원회의는 개막일을 1937년 7월 6일로 못박은 포고령을 채택했으나, 설계 변경과 건설 지연으로 일정은 계속 밀렸다. 1937년 여름, 전시회가 일회성이 아니라 매년 개최되는 상설 전시로 전환되면서 목조 임시관을 최소 5년 이상 견딜 구조로 다시 짓게 되었다.

그러나 1937년 가을, 건설 지연의 책임을 '사보타주'로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체르노프 자신이 체포되었다. 전시위원회 위원이던 아론 가이스테르, 야코프 즈바르스키, 모이세이 칼마노비치 등도 연이어 체포되었다. 전시회는 체르노프 없이 1939년 8월 1일 문을 열었고, 이후 VDNKh(국민경제성과전시회)로 개칭되어 소비에트 시대를 대표하는 전시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러시아 정부의 공식 기록도 'VDNKh의 출발점'으로 1935년 2월 17일 체르노프의 제안과 스탈린·몰로토프의 결재를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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