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독재"라 불린 아르메니아 출신의 개혁적 내무장관
1881년 3월 13일 아침, 알렉산드르 2세는 로리스-멜리코프의 개혁안에 서명하며 말했다: "나는 승인했다. 그러나 이것이 헌법을 향한 첫걸음임을 스스로 숨기지 않는다." 몇 시간 후 차르는 암살당했다.
아르메니아 귀족 출신으로 캅카스 전쟁과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기병 장군이었으나, 그의 역사적 무게는 군사적 공적보다 정치 개혁에 있다. 1880년 겨울궁전 폭파 사건 이후 전제적 권한을 위임받아 '마음의 독재'로 불린 온건 노선을 펼쳤으며, 혁명 탄압과 동시에 검열 완화·지방 자치·선거 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개혁안을 추진했다.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한 1881년 3월 13일 아침, 차르는 로리스-멜리코프의 선거 자문위원회 구상을 승인했으나, 알렉산드르 3세가 즉위 후 콘스탄틴 포베도노스체프의 조언으로 개혁안을 폐기하고 전제정치를 선언했다. 러시아 최초의 헌정 실험을 설계했으나 반동에 좌절된 그는 개혁과 전제의 분기점에서 상실된 개혁의 순간을 상징한다.
경력 연표
- 1847캅카스로 전속, 체첸·다게스탄 전투 참전
- 1853–1856크림 전쟁 참전, 바얀두르·바슈카드클라르 전투
- 1855카르스 지역 사령관
- 1863–1875테레크주 총독 겸 테레크 카자크군 아타만
- 1877–1878러시아-튀르크 전쟁 캅카스 전선 사령관, 아르다한·카르스 점령
- 1879하리코프 임시 총독
- 1880최고행정위원회 위원장
- 1880–1881내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