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밀림에서 소련 위성통신·항법 제국을 세운 수석설계자
1987년 바이코누르. 고르바초프가 위성들을 보며 물었다. "이걸 다 시베리아에서 합니까?" 레셰트뇨프가 답했다. "시베리아에서 합니다. 하지만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그리고 200개 도시와 함께 일합니다."
코롤료프의 부수석 설계자로 출발해 1961년 시베리아 밀폐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26에서 독자 설계국 OKB-10을 창립한 우주공학자. 몰니야, 스트렐라, 라두가, 에크란 등 통신·방송 위성 계열을 차례로 완성했고, 측지·구난·항법 위성으로 영역을 넓혀 1982년에는 GLONASS 전지구 위성항법 시스템을 궤도에 올렸다. 그가 이끈 NPO PM(응용역학 과학생산연합)은 30여 종의 우주 시스템과 1,000기 이상의 위성을 제작해 소련 전체 위성의 3분의 2를 책임졌으며, 오늘날 ISS 레셰트뇨프 사로 이어져 러시아 위성산업의 중추로 남아 있다. 사회주의노동영웅, 레닌상 수상자이며 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이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0–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40–42모스크바 항공대학(MAI) 입학, 전쟁으로 알마아타 피난
- 1942–46세르푸호프 항공정비사 학교 수료, 제26예비전투항공연대 정비사 복무
- 1950MAI 우등 졸업, 티호미로프 지도로 로켓 주제 졸업논문
- 1950–57OKB-1(코롤료프) 기술사 → 선임기술사 → R-11 미사일 수석설계자
- 1958–59OKB-1 부수석설계자, CPSU 입당(1951)
- 1959–61OKB-1 동부지부장(크라스노야르스크-26), 얀겔로부터 경량발사체 인수
- 1961–67OKB-10 수석설계자, 코스모스 발사체·스트렐라 위성 첫 발사(1964)
- 1967–77KB PM(응용역학 설계국) 총설계자, 몰니야·라두가 위성 계열 개발
- 1977–96NPO PM 총설계자 겸 총괄국장, GLONASS(1982)·에크란·고리존트·루치 등 완성
- 1974사회주의노동영웅 수훈
- 1980레닌상 수상
- 1984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아카데미크)
관련 역사 사건
시베리아의 인재 양성과 레셰트뇨프 학교
레셰트뇨프가 크라스노야르스크-26에서 만든 것은 위성만이 아니었다. 1959년 6월, 모스크바에서 온 생산 기반이 시베리아의 폐쇄도시로 옮겨졌고 그가 이전 작업을 지휘했다. 위성과 로켓을 만들 사람이 현지에 없었으므로, 인력 양성은 곧 설계국의 존속 조건이었다. 1960년 9월 1일 똑같은 문제를 안은 크라스노야르스크 기계공장과 함께 공장-브투즈(생산 현장과 병행하는 공과대학 과정)가 문을 열었고, 첫 학기는 200명이었다.
레셰트뇨프는 이 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1967년부터 크라스노야르스크 공과대학에서 가르쳤고 1975년에 교수가 되었으며, 1989년부터는 크라스노야르스크 국립대학의 역학·관리과정 교수 겸 학과장을 맡아 생산 현장과 교육을 함께 끌고 갔다.
그가 만든 기업은 그에게서 배운 사람들로 이어졌다. 재학생들이 실습을 마치고 들어온 이 학교는 스투데니(학생 설계국)를 조직해 위성 제작에 직접 참여시켰고, 1989년에는 독립된 크라스노야르스크 우주기술연구소가 되었다. 그가 죽은 뒤인 1996년에 그의 이름이 대학에 붙었고, 이후 시베리아 국립항공우주대학과 그 후신인 시베리아 국립과학기술대학으로 계보가 이어져 오늘날에도 러시아 위성산업에 인력을 공급한다.
그가 남긴 영향은 한 기업이나 한 학교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 연구문헌은 그가 시베리아 과학학파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한다. 대학과 기업이 분리되지 않은 조건에서 레셰트뇨프는 지도자와 교사, 그리고 후속 인력 양성 체계를 한 사람이 겸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