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킷 로켓으로 우주 가는 길을 연 이론적 개척자
1948년 여름, 학술회의에서 '1000킬로미터가 로켓 사거리의 한계'라는 통념을 깨고 패킷 로켓으로 인공위성을 쏠 수 있다고 발표하자 회의장은 조소와 야유로 들끓었다. 9년 후 스푸트니크 1호가 궤도에 올랐다.
소련 우주개발의 이론적 아버지. 1933년 최초의 소련 액체연료 로켓 GIRD-09를 설계하고, 1948년 여러 로켓을 묶은 '패킷' 방식으로 궤도 도달이 가능함을 수학적으로 입증했다. 당시엔 조롱받았으나 코롤료프의 지지로 연구를 이어 스푸트니크·보스토크·루나 계획의 설계 기반을 닦았다. 1956년 OKB-1 제9설계국장을 맡아 인공위성과 유인우주선 설계를 총괄했으며, 라틴어에 능통한 고전적 교양인으로 '코스모넛'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다.
경력 연표
- 1932–1933GIRD 여단장, 최초의 소련 액체연료 로켓 GIRD-09 설계
- 1934–1938반응연구소(RNII) 부서장, 액체연료 로켓·상층대기 연구
- 1940–1943로켓 요격기 '302' 및 카추샤 발사체 설계팀 지휘
- 1946–1956NII-4 부소장 겸 과학고문, '티혼라보프 그룹' 지도 — 패킷 로켓 궤도 도달 이론 입증(1948)
- 1956–1974OKB-1 제9설계국장, 스푸트니크·보스토크·루나·행성 탐사선 설계 총괄
- 1962–1974모스크바 항공대(MAI) 교수
관련 역사 사건
VR-190 계획: 최초의 소련 유인 우주비행 구상
1944년 말, 소련 정보당국이 폴란드에서 독일의 V-2(A-4) 로켓 잔해를 확보한 직후, 티혼라보프는 곧바로 자신의 고고도 유인 로켓 스케치에 착수했다. 추력 30톤 엔진을 탑재한 단일 단계 로켓으로 조종사를 태워 고도 190킬로미터까지 수직 발사한 뒤 캡슐을 분리해 낙하산으로 귀환시키는 구상이었다. 이듬해 VR-190(«Высотная ракета», 고고도 로켓)으로 명명된 이 계획은 1946년 3월 항공산업부 장관 흐루니체프에게 정식 제안되었고, 스탈린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VR-190은 기술적으로 V-2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그 지향점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당시 군과 산업계가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연장에 골몰할 때, 티혼라보프는 로켓을 인간을 우주 가장자리로 보내는 수단으로 바라본 최초의 소련 기술자였다. 조종사는 190킬로미터 정점에서 약 4분간 무중력을 경험하게 되며, 캡슐은 대기권 재진입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기술적 난제들(신뢰성 있는 추진 체계, 재진입 열 차폐, 비상 탈출 장치) 앞에서 VR-190은 진척되지 못했다. 1946년 5월 소련에 전담 로켓 산업이 출범하면서 계획은 실질적으로 중단되었고, 티혼라보프와 소수 팀원들은 NII-4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다단계 로켓과 인공위성 연구로 방향을 전환했다. VR-190 자체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 계획을 통해 축적된 고고도 비행 역학, 캡슐 설계, 유인 귀환 개념은 15년 후 보스토크 계획의 지적 토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