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민포름에서 서유럽 공산당을 공격하고, 훗날 『새 계급』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해부한 유고슬라비아 반체제 인사
나는 공산주의의 전 길을 걸었다: 젊은 혁명가에서 독실한 스탈린주의자로, 그리고 완전한 환멸에 이르기까지.
몬테네그로 출신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지도자로, 파르티잔 투쟁과 전후 국가 건설에서 티토의 가장 가까운 동지 중 하나였다. 1947년 코민포름 창설 회의에서 카르델리와 함께 프랑스·이탈리아 공산당의 '의회주의적 기회주의'를 신랄히 비판했으며, 그의 회고록은 이 회의의 내부 동학에 관한 핵심 사료로 남아 있다. 당내 민주화와 관료 특권층 비판을 제기하다 1954년 모든 직위에서 축출되었고, 수감 중 밀반출한 『새 계급』에서 공산당 관료가 착취적 지배계급으로 변했다고 주장해 국제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30년 넘게 투옥과 감시 속에서도 저술을 이어간 동유럽 최초의 저명한 공산권 반체제 인사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32–1936유고슬라비아 공산당 활동, 체포 및 수감
- 1937–1939KPJ 중앙위원 및 정치국 위원
- 1941–1945몬테네그로 파르티잔 봉기 지도, 최고사령부 선전 담당
- 1945–1953유고슬라비아 연방 부통령, 민족의회 의장
- 1953–1954『보르바』에 일당제 비판 연재, 당에서 축출
- 1956–1966반체제 저술로 두 차례 수감, 『새 계급』·『스탈린과의 대화』 해외 출간
- 1966–1995베오그라드에서 감시 속 자유, 저술 활동 지속
관련 역사 사건
몬테네그로 민족 문제와 입장의 수정
질라스는 몬테네그로 민족 문제에 대한 입장을 평생에 걸쳐 바꾼 인물이다. 1945년 5월 1일 『보르바』에 발표한 「몬테네그로 민족 문제에 대하여」에서 그는 당시 공산주의 진영의 몬테네그로 정체성 이해를 정식화했다. 그는 몬테네그로인이 '기원상 세르비아인'이지만 역사 과정에서 별개의 민족으로 성장했다고 논증하고, 기원이 같다는 사실에서 하나의 민족이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민족 형성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한 입장이며 실제로는 헤게모니의 이념적 근거가 된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몬테네그로의 민족 형성은 세르비아보다 한 세기 늦게 시작되어 1941~45년 전쟁기에 정점에 이르렀으므로, 연방 안의 별도 공화국 지위는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의 아버지 니콜라는 자녀들의 공산주의 이념은 받아들였으나 몬테네그로인이 세르비아인이 아니라는 주장만은 인정하지 않았고, 질라스는 회고록에서 아버지와 이 문제로 다툰 일을 기록했다.
권좌에서 밀려난 뒤 그는 이 입장을 크게 수정했다. 1971년 12월 30일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몬테네그로인이 세르비아 민족의 구성 부분이라고 말하고, 몬테네그로가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에 별도 공화국 지위와 '별개의 몬테네그로 민족'이라는 발명으로 처벌받았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에는 자신이 사상과 권력 영역에서의 지위 때문에 몬테네그로 민족에 대한 지탱하기 어려운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냈다고 인정하면서도, 몬테네그로인이 세르비아 민족의 변종이라는 견해는 유지했다. 1991년에는 언제나 몬테네그로인이 세르비아인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말하면서, 억압해서도 발명해서도 안 되는 차이가 존재하며 몬테네그로는 국가적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세르비아와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1954년 이후 그는 『네고시』와 『상승과 몰락』 등에서 별개의 몬테네그로 민족성과 민족 정체성을 부정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스스로를 세르비아인으로 규정했다. 1990년대 이후 일부 저자들은 그가 1945년의 글로 몬테네그로 민족을 '발명'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