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비서실에서 일하고 스탈린과 결혼한, 자신의 정치적 독립을 추구했던 볼셰비키 여성
1932년 11월 8일 밤 보로실로프의 만찬에서, 스탈린이 그녀에게 오렌지 껍질을 던지며 '이봐!'라고 부르자 알릴루예바는 '나는 당신의 "이봐"가 아니에요!'라고 응수하고 자리를 떠났다.
올드 볼셰비키 가문의 막내딸로, 1917년 7월 봉기 당시 아버지 세르게이 알릴루예프는 자택에 레닌을 은닉했고, 대부는 아벨 예누키제였다. 1918년 당 입당 후 레닌 비서실과 선동선전부에서 일했고, 1929년 산업아카데미에 입학해 합성섬유 공학을 공부하며 니키타 흐루쇼프의 당 셀 동료가 되었다. 스탈린과의 결혼은 그녀를 크렘린 중심에 두었으나, 독립적 정치 주체로 서려는 열망과 아내 역할 사이의 긴장 속에서 1932년 31세로 생을 마감했다.
경력 연표
- 1918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입당
- 1918–1919민족문제인민위원부 비서
- 1919–1921V.I. 레닌 비서실 근무 (리디야 포티예바 지휘 하)
- 1921당 숙청으로 제명, 레닌의 개입으로 후보당원 복권 (1924년 정식 복권)
- 1924–1929선동선전부 국제농업연구소 보좌관
- 1929–1932모스크바 산업아카데미 섬유학부 학생 (합성섬유 전공), 니키타 흐루쇼프와 동문
당원, 비서, 학생 — 독립적 정치 주체를 향한 길
알릴루예바는 1918년 16세의 나이로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에 입당했다. 처음에는 스탈린이 이끄는 민족문제인민위원부에서 비서로 일했으나, 남편에게 의존하기를 거부하고 1919년 레닌의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리디야 포티예바의 지휘 아래 근무한 그녀의 일지는 『레닌 전집』(제42권)에 실린 「레닌 당직비서 일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 1922년 11월부터 1923년 3월까지 그녀가 남긴 기록들은 레닌이 중병으로 사무실에 거의 나오지 못하던 시기에도 외국무역 독점, 그루지야 문제, 외국 대표 면담 등 핵심 국정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레닌은 그녀가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둔 탓에 철자 오류가 잦았음에도 이를 너그럽게 넘겼고, 섬세한 임무를 그녀에게 맡기곤 했다.
1921년 당 숙청으로 제명되었을 때도 레닌이 직접 개입해 후보당원으로 복권시켰고, 1924년 정식 당원 자격을 되찾았다. 이후 선동선전부 산하 국제농업연구소에서 보좌관으로 일하다가 1929년 모스크바 산업아카데미 섬유학부에 입학해 합성섬유 공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처녀명으로 등록해 신분을 숨겼고, 크렘린에서 트램으로 통학했다. 정치국원 안드레이 안드레예프의 아내 도라 하잔과 함께였다. 당 셀에서 그녀와 동료였던 니키타 흐루쇼프는 훗날 "그녀와의 인연이 내 인생의 복권이었다"고 회고했다. 학업과 당 활동을 병행하며 독립적인 정치 주체로 서려 했던 그녀의 노력은, 크렘린의 아내라는 역할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의 모순 속에서 점점 더 큰 긴장을 빚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