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마트베예비치 골로데트

Николай Матвеевич Голодед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벨라루스 1894–1937 ✕ 심문 중 투신

10년간 벨라루스 공업화를 진두지휘한 정부수반, 아카데미 숙청에 서명하고 같은 심판대에 서다

1937년 6월 21일 민스크 NKVD 5층 심문실에서 '폴란드 간첩' 혐의를 받던 골로데트는 심문 도중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 공식 발표는 자살, 비공식 증언은 구타 살해 후 위장.

일곱 살부터 목동으로 일한 농민 혁명가로, 1927년부터 벨라루스 공화국 정부수반을 10년간 맡아 공업화와 집단화를 주도하며 공화국을 농업 국가에서 공업 국가로 바꾸어 놓고 1935년 레닌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과학아카데미 학자 추방 결의에 직접 서명한 그 자신도 1937년 '폴란드 간첩'으로 체포되어 민스크 NKVD 심문 중 투신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농업 공화국을 공업 국가로: 산업화와 집단화

1927년 벨라루스 SSR 인민위원회의 의장에 오른 골로데트는 10년 내내 공화국의 경제 성장 속도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벨라루스에 산업화와 집단화가 불가피하다고 논리를 세웠고, 그 실현을 직접 진두지휘하여 공화국을 농업 국가에서 공업·농업 국가로 바꾸어 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벨라루스 국가문서고는 이 기여를 명시적으로 기록하며, 1935년 그가 '수년에 걸친 농업·공업 분야의 두드러진 성과'를 이유로 레닌 훈장을 받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그가 이끈 변혁은 정권과 공화국 지식인 사회를 맞부딪치게 한 계열에 서 있었다. 1930년대 초 벨라루스 '민족민주주의' 숙청에서 골로데트는 다른 공화국 지도부와 함께 벨라루스 과학아카데미 학자들을 '반혁명 민족민주주의자'로 몰아 추방하는 결의에 직접 서명했다. 공업 건설을 앞세운 한 지도자가 문화·학문의 벨라루스적 자산을 제거하는 서류에 손을 얹은 셈이다. 그 자신도 몇 년 뒤 같은 심판대에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서명은 그 시대 지도부가 공업화를 대가로 치른 비용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벨라루스어 출처: 벨라루스 국립문서고(archives.gov.by)의 인물 전기, 스프라보츠니크 포 이스토리이 KPSS 1898–1991(knowbysight.info), 러시아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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