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개인비서에서 과학아카데미 상임서기까지 소비에트 과학행정의 설계자
국유은행 총재 시포프가 스몰니에 체포되어 있던 밤, 고르부노프는 "특별한 예의로서, 대단히 성가셨지만" 자신의 침대를 시포프에게 양보하고 의자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니콜라이 고르부노프는 1917년 11월부터 인민위원회의 서기 겸 레닌의 개인비서로 소비에트 정부의 초기 행정 기반을 구축한 볼셰비키 기술관료였다. 바우만 모스크바 고등기술학교 총장(1923-1929)과 소련 과학아카데미 상임서기(1935-1937)를 지내며 과학기술 행정의 핵심 연결고리로 활동했고, 니콜라이 바빌로프의 식물탐사와 전연방 농업과학아카데미(바스흐닐) 설립을 적극 뒷받침했다. 타지키스탄 파미르 원정대(1932-1935)를 이끌어 1933년 소련 최고봉 스탈린봉(현 이스모일 소모니봉) 첫 등정을 조직했으며, 등반가 예브게니 아발라코프와 함께 정상 공격에 직접 참여했다. 대숙청기인 1938년 체포되어 '등반가 사건'으로 처형되었고, 1954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 1917–1920인민위원회의 서기, 레닌의 개인비서
- 1918–1919최고경제회의 과학기술부장
- 1919–1920제14군·제13군 정치위원 (남부전선)
- 1920–1930소련 인민위원회의 사무국장
- 1923–1929바우만 모스크바 고등기술학교 총장
- 1932–1935타지크-파미르 원정대장
- 1935–1937소련 과학아카데미 상임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