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플라토노비치 오가료프

Николай Платонович Огарёв
러시아 러시아 1813–1877 ○ 망명 중 사망

게르첸과 함께 《종》을 편집한 러시아 유토피아 사회주의 이론가

「우리는 이 언덕 위에서, 목숨을 바쳐 우리가 선택한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 1827년 참새 언덕에서 열다섯 살의 오가료프와 게르첸이 러시아 해방을 위해 나눈 평생의 맹세.

러시아의 시인·철학자이자 혁명적 민주주의자. 1827년 참새 언덕에서 게르첸과 러시아 해방을 위한 평생의 맹세를 나누었으며, 런던 망명 중 《종》(콜로콜)과 《북극성》을 공동 발행하며 개혁기 러시아 여론을 움직였다. 농민 공동체에 기초한 '러시아 사회주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비밀 조직 '토지와 자유'의 창설에 참여했으며, 귀족기에서 라즈노친치기 혁명운동으로의 이행을 이론적으로 매개했다.

경력 연표

러시아 사회주의와 농민 공동체

오가료프는 게르첸과 함께 '러시아 사회주의' 이론의 공동 창시자였다. 이 이론의 핵심은 러시아의 농민 공동체(오브쉬나)가 서유럽의 자본주의 발전 단계를 건너뛰고 사회주의로 직접 이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오가료프는 농민이 공동체를 통해 토지에 대한 집단적 권리를 의식하고 있으며, 공동체의 평등주의적 토지 재분할 관행이 이미 사회주의적 원리를 내장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1850~60년대에 걸쳐 《종》과 《북극성》에 발표한 일련의 논문들, 특히 〈러시아 문제〉 연작에서 이 구상을 체계화했다. 오가료프는 농노제의 즉각적 폐지, 토지의 농민 공동체 공동 소유로의 이전, 공동 경작(아르텔)의 확립을 주장했다. 그의 구상은 1861년 농노해방령의 한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론적 기초가 되었으며, 그는 해방된 농민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한 형태의 농노제를 다른 형태로 교환했을 뿐'이라고 평했다. 이 이론은 후일 나로드니키 운동의 이념적 선구가 되었고, 공동체를 러시아 혁명운동의 중심 문제로 자리잡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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