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그리고리예비치 예고리체프

Николай Григорьевич Егорыче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20–2005 ↓ 강등 1967

모스크바 당 보스에서 브레즈네프에게 도전했다가 외교관으로 밀려난 인물

1967년 6월 전원회의 연단에서 브레즈네프의 면전에 '수도의 방공은 충분히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한 그 순간, 모스크바 시당위원장으로서의 정치 경력은 끝났다.

니콜라이 예고리체프는 1962년부터 1967년까지 모스크바 시당위원회 제1서기를 지낸 소련의 당·국가 지도자이다. 그의 재임기 모스크바에서는 대규모 주택 건설로 300만 명 이상이 새 보금자리를 얻었고, 그의 주도로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의 무명용사 묘가 조성되었으며 트리움프 개선문이 복원되었다. 1967년 6월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모스크바 방공 체계의 취약성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브레즈네프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했고, '콤소몰 그룹'(셸레핀 파벌)의 일원으로 간주되던 그 발언 직후 해임되었다. 이후 덴마크 대사(1970~1984)와 아프가니스탄 대사(1988)를 지내며 소련군 철수 시기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제2차 세계대전 참전과 전후 복학 (1941~1950)

예고리체프는 1938년 바우만 고등기술학교의 신설 방어학부인 장갑병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학업이 중단되었다. 1941년 6월 30일 학생들과 함께 칼루가 주 방어 공사에 동원되었다가 9월에 모스크바로 돌아왔고, 학교가 이젭스크로 이전하게 되자 모스크바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그해 10월 그는 노동자 대대로 편성된 제3모스크바 공산사단에 자원 입대해 대전차 저격수 독립소대의 정치부지도자 대리로 모스크바 방어전에 참가했으며, 소속 소대는 힘키 교외의 모스크바 운하 다리를 지켰다.

1942년 초 사단이 북서전선으로 이동한 뒤 그는 처음으로 실전을 치렀고, 3월 8일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같은 해 6월 제241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중대 정치부지도자 대리와 소대장을 지냈으며, 8월 10일 다시 부상했으나 일주일 만에 전선으로 복귀했다. 이후 스텝 전선과 제1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쿠르스크 전투, 드네프르 강 도하, 키예프 해방 전투에 참가했다.

1943년 11월 그는 키예프의 장교 암호통신 과정에 파견되어 수료 후 교관으로 일했고,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 반란군(УП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전투에 대한 평가는 사료마다 다르므로 여기서는 소련 측 기록으로만 밝힌다. 그는 드레스덴 부근 독일에서 승전을 맞았고, 1945년 6월 제1우크라이나 전선 사령부 제8과 특수통신대 소대장으로 적성훈장을 받았다. 1946년 바우만 학교에 복학해 학부 콤소몰 서기와 학교 콤소몰 조직 책임자를 거쳐 1950년 우등으로 졸업하고 같은 해 학교 당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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