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에서 굴라그를 거쳐 후기 고전적 서정으로 나아간 시인
이 황량한 시대의 사막에, 전쟁과 화재와 맹렬한 파괴 끝에, 우리 고대 영광의 이 외롭고 무엇과도 닮지 않은 성당이 서 있다.
니콜라이 자볼로츠키는 1928년 다닐 하름스, 알렉산드르 브베덴스키와 함께 아방가르드 문학 그룹 오베리우(OBERIU)를 공동 창립한 소비에트 시인이자 번역가이다. 첫 시집 『기둥들』(Столбцы, 1929)은 NEP 시기 소비에트의 그로테스크한 일상을 부조리한 이미지와 풍자로 그려내 혁명 후 러시아 시의 이정표가 되었다. 1938년 대숙청 때 반소비에트 작가조직 결성 혐의로 체포되어 5년간 수감되었고, 유형 중 중세 서사시 『이고리 원정기』의 탁월한 번역을 완성했다. 전후 모스크바로 복귀한 후에는 자연과 인간의 형이상학적 관계를 숙고하는 고전적 서정시로 전환하여 튜체프에 비견될 만한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28오베리우(OBERIU) 공동 창립
- 1929첫 시집 『기둥들』(Столбцы) 출간
- 1933서사시 「농업의 승리」 발표로 비판 공격 촉발
- 1937두번째 시집 출간
- 1938–1943대숙청으로 체포·수감, 유형 중 『이고리 원정기』 번역
- 1946소비에트 작가동맹 복귀, 모스크바 정착
- 1948세번째 시집 출간
- 1957마지막 생전 시집 및 연작 「마지막 사랑」 발표
관련 역사 사건
체포와 유형, 문학으로의 복귀 (1938–1946)
1938년 3월 19일 자볼로츠키는 레닌그라드의 이른바 ‘작가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당국은 심문에서 니콜라이 티호노프 등 동료 작가들에 대한 진술을 요구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다. 1938년 9월 그는 강제노동수용소 5년형을 선고받고 1939년 초 극동의 보스토크라그로 이송되어 벌목과 채석 작업을 했다. 수용소 관리부의 제도사로 일하게 되면서 문학 작업을 이어갈 여지가 생겼고, 1943년 형기가 끝난 뒤에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구금이 연장되었다. 1944년 8월 18일 석방되었으나 자유로운 귀환은 아니었다. 그는 알타이 변경주에서 비호송 노동자로 남아 일했고, 이듬해 가족과 함께 카라간다로 옮겨 수용소 건설사업의 기술제도사로 일했다.
카라간다에서 그는 『이고리 원정기』의 시적 번역을 마무리했다. 직장 동료들이 소련 작가동맹에 그의 귀환과 번역 출판을 청원했고, 1945년 말 모스크바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번역은 1946년 잡지 『옥탸브리』에 전편이 실렸으며, 같은 해 그는 모스크바 거주 허가를 받고 작가동맹 회원 자격을 회복했다. 1963년 4월 24일 사후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