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야 포즈데라츠

Nurija Pozderac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동맹 공산주의 유고슬라비아 보스니아 (보슈냐크계) 1892–1943 ✕ 전사

다민족 저항 연합을 대표한 보스니아 정치가

1941년 여름 우스타샤 지도자 크바테르니크가 카진으로 찾아와 협력을 권하자, 포즈데라츠는 그와의 면담 자체를 단호히 거부했다.

누리야 포즈데라츠는 카진 지역의 교사 출신 보스니아 무슬림 정치가로, 우스타샤 정권의 협력 요구를 거부하고 세르비아인과 유대인 박해에 맞섰다. 아내 데블레타와 함께 수십 명의 유대인 피란민을 구했고, 1942년 아브노이 부의장으로 선출되며 민족적으로 다원적인 해방전선의 대표 인물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유대인과 세르비아인 구출

1941년 4월 유고슬라비아 분할 뒤 괴뢰국 크로아티아 독립국(Nezavisna Država Hrvatska)이 세워지자 우스타샤는 유대인·세르비아인·로마인을 상대로 '인종 청소'를 시작했다. 그해 6월 비하치에서 박해가 시작되며 대부분의 유대인은 보산스키페트로바츠 인근 부코바차 수용소로 끌려갔지만, 상당수는 30킬로미터 떨어진 카진으로 피신을 택했다. 이들이 기댄 사람이 바로 포즈데라츠였다. 그는 몇 달 전 지역 세르비아인을 살해하려던 우스타샤 무리를 몰아낸 적이 있어, 그의 보호를 바라는 기대가 컸다.

포즈데라츠는 아내 데블레타와 함께 수십 명의 유대인 피란민을 자기 집에 받아들여 먹을거리와 은신처를 제공했다. 비하치의 우스타샤 지도자 류보미르 크바테르니크가 협력을 구하러 온 자리에서 면담조차 거부한 그 행동이 곧 구출이기도 했다. 포즈데라츠 부부가 구한 이들 가운데는 모니 아티아스, 이지도르 레비, 클라리차 레비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 뒤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 야드바솀에 그들의 행적에 대한 증언을 제출했다.

1943년 6월 수체스카 전투에서 포즈데라츠가 전사한 뒤 우스타샤는 카진에 남아 있던 데블레타를 체포해 보산스키노비와 그라디슈카 수용소로 끌고 갔다. 그녀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개입으로 풀려났는데, 티토는 포로로 잡은 독일 장교와 그녀를 맞바꾸었다. 2012년 야드바솀은 포즈데라츠와 데블레타 부부에게 '열방의 의인' 칭호를 추서했고, 2013년 장녀 사데타 불류바시치가 이들을 대신해 메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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