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2에서 An-225까지: 소련 수송항공의 아버지
안토노프는 자신의 가장 큰 성공으로 거대 수송기가 아닌 An-2 복엽기를 꼽았다. "An-2는 나의 가장 위대한 성공작입니다. 세계 항공 기술에 아날로그가 없는, 오직 우리의 조건을 위해 만들어진 비행기입니다."
소련의 수송항공을 한 세대 앞서 이끈 항공기 설계자. 1946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OKB-153(후일 안토노프 설계국)을 창설하고, 50년 이상 양산된 유일한 항공기 An-2 복엽기로 출발해 An-12 군용수송기, An-22 안테이, An-124 루슬란, An-225 므리야에 이르는 중량물 수송기 계보를 완성했다. 비포장 활주로에서도 운용 가능한 실용적 설계로 소련 전역과 수십 개국에서 민군 겸용으로 채택되었다. 글라이더 설계로 출발해 야코블레프의 제1부설계사를 거친 그는 화가이자 시인이기도 했으며, "못생긴 비행기는 날지 못한다"는 신념으로 공학과 미학의 일치를 추구했다. 영국 타임스는 An-22를 두고 "소련이 항공기 제작에서 모든 나라를 앞서게 했다"고 썼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1 산업·생산 운영 · 소련 · 중공업 · 군수공업
경력 연표
- 1924–30글라이더 설계 시작, OKA-1 「골루비」로 전연방 글라이더 경연대회 1등상
- 1931–38모스크바 글라이더 공장 수석설계사, 30종 글라이더 개발
- 1938–43야코블레프 설계국 수석 엔지니어, A-7 군용 글라이더 개발
- 1943–46야코블레프 설계국 제1부설계사, Yak-3 전투기 개량
- 1946–52OKB-153 설계국장(노보시비르스크), An-2 첫 비행(1947), 스탈린상(1952)
- 1952–84안토노프 설계국 총설계사(키예프), An-12·An-22·An-124 계열 개발
- 1958–84소련 최고회의 대의원(5~11대 소집), 우크라이나·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62–66레닌상(An-12, 1962), 사회주의노동영웅(1966)
관련 역사 사건
An-2의 구상과 생산 체계 구축
안토노프는 야코블레프 설계국에서 일하던 중 전쟁 뒤의 민간 항공을 구상했고, 비행장 조건이 열악한 곳에서도 쓸 수 있는 단거리 이착륙 다목적기를 설계하려 했다. 1944년 8월 복엽기 구상의 도면을 전문가들에게 보냈으나 여러 차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946년 초 야코블레프가 제작을 승인하자, 별도 설계국을 세워 계획을 추진했고 OKB-153은 1946년 5월 31일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숙련 설계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안토노프는 노보시비르스크 항공기술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을 채용했다.
그가 구상한 항공기는 농업용 SKh-1로 개발되어 1947년 8월 31일 첫 시험비행을 했다. 1948년 우크라이나의 카갈리크 인근에서 실시한 농약 살포 시험은 전임기 Po-2보다 작업 효율이 10배 높음을 보였다. 같은 해 8월 키이우 항공공장에서 An-2라는 이름으로 양산이 시작됐고, 첫 양산기는 1949년 9월 6일 비행했다. 초기 생산은 공장 여건 때문에 제한적이었다. 1949~1952년 생산량은 185대였으나, 설계국을 키이우로 옮긴 뒤인 1953~1963년에는 3,164대가 생산됐다. 안토노프 설계국은 1950년까지 대기 관측과 산불 진화 등 용도별 파생형을 만들었고, 착륙장치 선택지를 통해 젖은 땅·눈·물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도록 했다. 폴란드에서는 1961년부터 생산을 본격화해 43년 동안 11,915대를 제작했다. 안토노프의 설계 구상은 생산지와 운용 목적이 여러 나라로 확장되는 항공기 체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