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후기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소련 재래식 무기 생산을 총괄한 국방공업장관
1941년 7월, 22세의 피노게노프는 7일간 열차로 코브로프 공장에 도착해 곧장 작업장으로 향했다. 두 달 동안 공장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ShVAK 기관포의 가장 핵심 부품인 포미 장치에 나를 배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22세의 나이로 데그탸료프 공장에 배치되어 항공기관포 ShVAK와 대전차소총 PTRD 생산을 진두지휘했고, 전후에는 오토바이 민수 전환을 거쳐 공장장까지 오른 군수 생산 행정가다. 1954년부터 6년간 공장장을 맡으며 S-75 지대공 미사일 유도장치와 소련 최초의 대전차유도탄 '시멜'의 양산 체계를 구축했다. 1979년 세르게이 즈베료프의 후임으로 국방공업장관에 임명되어 페레스트로이카까지 10년간 소련의 포병·소화기·탄약·광학기기 생산 전체를 지휘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 중 군수 조달의 안정성을 책임졌다. 사회주의노동영웅(1976), 레닌상(1982), 국가상 2회(1979, 1989)를 수상했다.
경력 연표
- 1941코브로프 제2공장(데그탸료프 공장) 교대 마스터로 배치 — ShVAK 항공기관포 생산
- 1941–1942선임 마스터, 부공장장, 공장장 대리 — DP·DT 기관총, PTRD 대전차소총 생산
- 1942–1946공장장 — ShVAK 기관포·기관총·대전차소총 공장 책임
- 1946–1948오토바이 생산 책임자 — 전후 민수 전환, K-125 모델 시리즈 출시
- 1948–1953공장장, 생산부장 대리, 주임기사 — 공장 내 주요 생산 책임
- 1953–1954주임기사 겸 부공장장
- 1954–1960데그탸료프 공장장 — S-75 유도장치·대전차유도탄 '시멜' 양산 체계 구축
- 1960–1963블라디미르 국민경제회의 부의장 — 기계제조·에너지 관할
- 1963–1965소련 각료회의 국방기술 국가위원회 제6국장
- 1965–1973소련 국방공업 차관
- 1973–1979소련 국방공업 제1차관
- 1979–1989소련 국방공업장관 — 포병·소화기·탄약·광학기기 생산 총괄
- 1989–1992연방급 개인 연금 수급자
- 1992–2004OAO 특수기계제조·야금 선임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