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 그리고리예비치 그리고렌코

Пётр Григорьевич Григоренко
소련 우크라이나 1907–1987 ○ 망명 중 뇌졸중

소련 장성에서 인권·민족 권리 옹호로 전향한 반체제 인사

"지하에서는 쥐밖에 만날 수 없다" — 반체제 활동은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담아 회고록 제목이 된 말.

소련군 소장(1959) 출신의 반체제 인사로, 크림 타타르인의 귀환 권리 투쟁을 이끌고 모스크바·우크라이나 헬싱키 그룹 창립에 모두 참여한 인권운동가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공개 규탄하고 두 차례 정치적 정신병원에 강제 수감(1964–65, 1969–74)되면서 소련의 정신의학 정치적 남용을 상징하는 사례가 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크림 타타르 민족운동과의 결합

1966년 블라디미르 부콥스키가 그리고렌코를 모스크바 반체제 인사들의 모임에 소개하면서, 그는 작가 알렉세이 코스테린을 통해 크림 타타르인의 비극을 처음 접했다. 1944년 5월 스탈린의 명령으로 약 20만 명의 크림 타타르인 전 주민이 '집단 배신'이라는 누명을 쓰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으며, 수송 과정과 정착 초기의 참상으로 전체 인구의 46%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리고렌코는 곧바로 이들의 귀환 권리 투쟁에 뛰어들었다.

결정적 계기는 1968년 3월 17일, 모스크바의 크림 타타르 대표 60여 명이 코스테린의 72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연 자리였다. 병석의 코스테린을 대신해 참석한 그리고렌코는 이 자리에서 크림 타타르인들에게 '간청하지 말고 요구하라'고 촉구하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그는 1944년의 강제이주가 국제법상 '집단살해(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고 공개적으로 규정했으며, 소련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활용하고 국제 여론에 호소하라고 권고했다. 이 연설은 크림 타타르 민족운동과 소련 반체제 운동을 연결한 분수령이 되었다.

그리고렌코는 같은 해 6월 크림 타타르 대표들과 함께 '크림 타타르 인민 대표들이 세계 여론에 호소함'이라는 문서를 작성해 사미즈다트로 유통시켰다. 이 항소문은 추방의 실상과 이후 20여 년간의 차별을 낱낱이 기록하고 '우리에게 행해지고 있는 것은 집단살해'라고 선언했으며, 크림 타타르 문제를 국제 인권 의제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69년 봄, 그리고렌코는 우즈베키스탄 치르치크에서 발생한 크림 타타르인 대규모 시위 관련 재판의 피고인들을 위해 공동 변호인(общественный защитник) 역할을 자청했다. KGB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타슈켄트로 날아갔으나, 재판은 열리지 않았고 그는 5월 7일 타슈켄트에서 체포되어 두 번째 강제 정신병원 수감으로 이어졌다. 그가 투옥된 후에도 크림 타타르인들은 타슈켄트 교도소 앞에서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인권 활동은 그리고렌코 석방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사후에도 크림 타타르 사회에서 그리고렌코는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로 남아, 1999년 심페로폴 중심부에 그의 흉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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