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펠릭스 조르주

Pierre Georges
프랑스 의용유격대 공산주의 프랑스 프랑스 1919–1944 ✕ 전사

점령에 맞선 공산주의 무장투쟁의 선구자

“티티의 원수를 갚았다!”

피에르 조르주는 프랑스 공산주의자이자 레지스탕스 전사로, 스페인 내전에서 국제여단으로 싸우며 일찍부터 반파시즘 무장투쟁을 경험했다. 1941년 8월 21일 파리 바르베 지하철역에서 알퐁스 모제르를 사살한 행동은 프랑스 공산당의 무장 저항을 가시화했지만, 독일 점령군의 인질 처형과 저항 세력에 대한 탄압도 격화시켰다. 그는 프레도, 뒤에는 파비앵 대령이라는 이름으로 지하 전투원과 마키를 조직했고, 파리 해방 뒤에는 파비앵 부대를 이끌고 동부 전선으로 향했다. 1944년 지뢰 폭발로 사망하면서, 그의 생애는 점령에 맞선 결단과 그에 뒤따른 가혹한 보복의 긴장을 함께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마키 조직에서 알자스 전선까지

1942년 3월 파리에서 체포될 위험이 커지자 조르주는 프랑슈콩테로 이동해 두(Doubs) 지역에서 FTP의 발미 중대를 조직하는 데 참여했다. 7월 14일에는 독일군이 징발한 리프(Lip) 공장의 전력 변압기를 폭파했다. 10월 25일 크뢰 드 로알루에트에서 헌병에게 포위됐을 때 머리에 중상을 입고도 탈출했지만, 11월 30일 파리 레퓌블리크역에서 체포됐다. 경찰과 게슈타포의 고문을 받고 프레네에 수감된 뒤 디종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로맹빌 요새로 이감된 후 1943년 5월 무렵 탈옥했다. 탈옥 날짜는 정확히 확정되지 않았다. 그는 보주와 오트손, 중북부 지역에서 FTP 마키 조직을 도왔다.

1944년 파리 해방에 참여한 뒤, 조르주는 독일군과의 전투를 이어가려고 약 500명 규모의 파리 여단을 모았다. 이 부대는 패튼 사단에 배속된 뒤 프랑스 동부의 알자스 전역에 투입됐고, 이후 드 라트르 휘하 제151보병연대로 편성됐다. 조르주는 1944년 12월 27일 뮐루즈 인근 합스하임의 지휘소에서 지뢰 폭발로 사망했다. 폭발 당시 그가 지뢰를 살펴보고 있었다는 설명이 널리 전해지지만, 사고의 구체적 경위는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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