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파견 의원으로 공포정치를 편 공안위원회 위원
1756년 마른 도 소메수에서 태어나 샬롱쉬르마른에서 변호사로 일했고, 1789년 삼부회 의원으로 뽑혀 제헌국민의회 서기를 지냈다. 1791년 5월부터 6월까지 자코뱅 클럽 의장을 맡았다. 국민공회 의원으로서 노르망디에 파견되어 연방주의자를 탄압했고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했다. 1793년 7월 공안위원회에 들어가 그해 가을부터 장봉 생탕드레와 함께 브레스트와 브르타뉴에 파견되어 해군을 재편하고 공포정치를 폈다. 1794년 5월 국민공회 의장을 지냈다. 테르미도르 반동 뒤 1795년 숨어 지내다 사면을 받았고 이후 공직을 맡지 않았으며, 1816년 국왕 시해자로 추방되어 1827년 브뤼셀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프리외르 드 라 마른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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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
정부·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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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1794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공안위원회 위원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789–1791삼부회·제헌국민의회 의원, 의회 서기
- 1791.05.29–06.29자코뱅 클럽 의장
- 1792국민공회 의원
- 1793.07.10–1794.07.31공안위원회 위원
- 1793.10–1794브레스트·브르타뉴 파견 의원
- 1794.05국민공회 의장
- 1816국왕 시해자로 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