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정부 부문을 오간 브레즈네프 시대 관료
1973년 2월, 브레즈네프는 상임간부회에서 폴랸스키의 농업장관 전보를 통보했다. 몸을 떨며 일어선 폴랸스키가 "아무도 나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하자, 브레즈네프는 "자, 지금 상의하고 있잖나"라고 응수했다.
정치국원·제1부수상을 지내며 1964년 흐루쇼프 축출을 위한 '폴랸스키 보고서'를 작성한 소련 고위 관료. 이후 농업장관을 거쳐 일본·노르웨이 대사를 지냈다.
경력 연표
- 1973–1976농업장관
관련 역사 사건
1964년 흐루쇼프 축출과 '폴랸스키 보고서'
1957년 '반당 그룹' 사건 당시 흐루쇼프를 열렬히 옹호했던 폴랸스키는 불과 7년 후, 바로 그 흐루쇼프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1964년 여름, 브레즈네프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흐루쇼프 축출 음모를 꾸몄고, 폴랸스키는 비밀리에 기소장 성격의 보고서 작성을 맡았다. '폴랸스키 보고서'로 알려진 이 문서는 흐루쇼프의 경제 실정, 농업 정책 실패, 독단적 통치 스타일, 숭배 조장 등 29개 항목에 걸쳐 그의 실책을 낱낱이 비판했다. 역사학자 루돌프 피호야의 연구와 당시 KGB 의장 블라디미르 세미차스트니의 증언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실제로는 KGB 경제분석가들이 작성하고 노후 타자기 두 대로 은밀히 출력한 것이었다. 1964년 10월 14일, 흐루쇼프는 휴가 중이던 피춘다에서 소환되어 당 중앙위원회 상임간부회에 출석했다. 폴랸스키는 좌중을 압도하는 신랄한 비판 연설로 포문을 열었고, 다른 동료들도 가세했다. 흐루쇼프가 자진 사퇴를 거부할 경우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낭독하려던 보고서 전문은 결국 불필요해졌다: 흐루쇼프는 저항 없이 물러났다. 보고서는 폐기 지시가 내려졌으나 살아남았고, 소련 권력투쟁의 적나라한 내막을 보여주는 사료로 남았다. 한때 흐루쇼프의 충실한 아군이던 폴랸스키가 그의 정치적 종말을 설계한 인물이 되었다는 점은, 소련 엘리트 정치의 냉혹한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