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공군과 항공산업의 주요 창설자
1930년 8월 2일, 바라노프는 보로네시 비행장에서 무장 낙하산병의 첫 전투 투하를 명령했다 — "적 영토에서의 사보타주 작전을 위한 무장 낙하산병 집단 투하를 시연하라" — 이날은 소련 공수군(VDV)의 탄생일이 되었다.
소비에트 공군과 항공산업의 주요 창설자로, 1924년부터 1931년까지 노농적군 공군(VVS) 사령관을 맡아 조직적·산업적 기초를 구축했다. 1932년부터 오르조니키제 휘하 중공업 부인민위원 겸 항공공업 총국장으로 항공기·엔진 생산 확대를 주도해 제2차 세계대전을 떠받칠 항공산업 토대를 놓았다. 1930년 8월 2일 보로네시 근교에서 소련 최초의 전투 낙하산병 투하를 지시해 공수군(VDV) 창설의 기원을 만들었고, 비밀 리페츠크 독일 항공학교 설립 협정에도 서명했다. 초기 로켓 연구(GIRD)와 성층권 비행선 개발을 지원했으며 모스크바·하리코프·카잔 항공대학 설립을 주도했다. 1933년 항공 사고로 아내와 함께 사망, 유해는 크렘린 벽에 안치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7–1918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2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 입당; 1913년 체포·페테르부르크 추방
- 1915–1917제국군 징집, 혁명 선동으로 체포되어 8년 중노동형 선고; 2월 혁명으로 석방
- 1917–1918루마니아 전선 병사대표소비에트 전선부 의장; 제4도네츠크군 사령관
- 1919–1921제8군·동부전선 남부집단·투르케스탄 전선·제1군·제14군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크론슈타트 진압 참가(적기훈장)
- 1921–1922투르케스탄 전선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바스마치 토벌 지휘(호레즘 공화국 군사훈장)
- 1923–1924노농적군 기갑부대장 겸 정치위원; 공군 부사령관 겸 사령관 대행
- 1924–1931노농적군 공군(VVS) 사령관; 1925년부터 소련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 1932–1933중공업 부인민위원 겸 항공공업 총국장
관련 역사 사건
공군 지휘에서 항공산업 조직으로
바라노프는 1923년 8월 노농적군 공군 부사령관이 되었고, 1924년 12월부터 1931년 6월까지 사령관을 맡았다. 이 시기 그는 공군의 재편에 적극 참여했으며 1925년부터 1931년까지 소련 혁명군사평의회 위원도 겸했다. 1931년 6월 전소련 국민경제회의 간부회 위원이자 전소련 항공연합 책임자가 되었고, 1932년 1월에는 중공업 부인민위원 겸 항공공업 총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군 조직의 지휘에서 항공기 생산 행정으로 역할이 옮겨간 것이다.
항공산업 책임자로서 바라노프는 항공 분야의 중등 기술교육과 고등교육 조직에도 관여했다. 한 전기 자료는 모스크바·하리코프·카잔 항공대학의 설립을 그의 발의에 연결하고, 성층권 비행선 개발과 반응추진 연구에 대한 그의 지원도 기록한다. 그는 1933년 9월 5일 항공기 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