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레오니도비치 카피차

Пётр Леонидович Капица
소련 러시아 1894–1984 ○ 자연사

베리야를 거부하고 초유동성을 발견한 노벨상 물리학자

지난 20년을 보면, 물리학의 새로운 발견에 기초한 세계 기술의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향들은 모두 해외에서 발전했고, 우리는 그것들이 확실한 인정을 받은 후에야 받아들였다. —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1946년

소련의 실험물리학자. 케임브리지에서 러더퍼드 밑에서 연구했고 1934년 소련에 억류되었다. 1937년 액체 헬륨의 초유동성 발견, 베리야의 원자탄 프로젝트 지휘를 거부했다. 197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34년 억류: 케임브리지에서 소련으로

카피차는 1921년부터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러더퍼드 밑에서 일하며 초강력 자기장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1929년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33년에는 왕립학회가 1만 5천 파운드를 들여 그를 위한 몬드 연구소를 건설했다. 1934년 9월, 카피차는 멘델레예프 탄생 100주년 기념 학회에 참석하고자 아내와 함께 레닌그라드에 도착했다. 소련 당국은 그의 출국을 금지했고, 쿠이비셰프와 카가노비치는 스탈린에게 '최후 수단으로 체포'를 제안했다. 스탈린은 '반드시 억류하라'고 지시했다. 카피차는 깊은 절망에 빠져 물리학을 포기하고 파블로프의 조수가 되겠다고 했으며, 아인슈타인과 러더퍼드에게 탄원했다. 소련 정부는 몬드 연구소 장비를 3만 파운드에 구매했고, 1935년 모스크바에 물리문제연구소(IFP)가 문을 열며 카피차는 연구를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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