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미로노비치 마셰로프

Пётр Миронович Машеров
소련 벨라루스 1918–1980 ✕ 교통사고

벨라루스 파르티잔 영웅에서 산업화를 이끈 15년의 지도자

스스로 알고 할 줄 아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 자신도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수학·물리 교사 출신으로, 위대한 조국전쟁에서 벨라루스 파르티잔 운동을 조직하여 1944년 소비에트 연방 영웅이 되었다. 1965년부터 벨라루스 공산당 제1서기로 15년간 재임하며 민스크 메트로, 대규모 화학공장, 브레스트 요새·하틴 기념관을 추진하여 전후 농업 공화국을 소련의 첨단 산업 거점으로 탈바꿈시켰다. 정치국 후보위원(1966–1980)이자 코시긴 개혁을 지지한 실용적 개혁파였으며, 1980년 교통사고로 사망할 당시 코시긴의 후임 각료회의 의장으로 유력시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벨라루스 경제 변혁 (1965–1980)

마셰로프가 제1서기로 재임한 15년은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경제 도약기였다. 국민소득은 몇 배로 증가했고, 그로드노 화학 콤비나트 '아조트', 노보폴로츠크 '폴리미르', 고멜 화학공장, 베료좁스카야 발전소 등 대규모 산업 시설이 건설되었다. 그는 고스플란(국가계획위)이 노보시비르스크를 우선시하던 민스크 메트로 건설을 브레즈네프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관철시켰다. 농업에서는 1960년대 초 평균 230만 톤이던 곡물 수확량을 1977년 730만 톤까지 끌어올려 공화국의 식량 자급을 실현했다. 마셰로프는 코시긴 개혁을 적극 지지하며 순수한 행정명령식 경제 운용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고자 했고, 공화국 차원의 정기적인 경제 세미나를 소련에서 유일하게 도입했다. 브레스트 공과대학, 고멜 공과대학, 민스크 문화대학, 노보폴로츠크 폴리테크닉 등 여러 고등교육기관을 신설했으며, 직업기술교육 체계를 마카렌코의 노동공동체 방식으로 재편해 청소년 범죄율을 낮추었다. 브레스트 요새, 하틴, '돌파' 기념관과 영광의 언덕을 조성했고, 모스크바의 반대를 무릅쓰고 민스크에 '영웅도시' 칭호를 부여받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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