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토지 국유화안에 맞서 지방공유화 강령을 당 대회에서 관철한 멘셰비키 농업 이론가
1867년 오렌부르크현의 구교도 카자크 집안에서 태어난 경제학자다. 카잔 대학에서 페도세예프의 마르크스주의 서클에 드나들다 쫓겨나 3년을 갇혔다. 1896~1897년 사마라에서 첫 합법 마르크스주의 신문 《사마라 통보》를 편집했다. 1903년 당 분열 뒤 멘셰비키에 섰고, 1906년 당 대회에서 레닌의 토지 국유화안에 맞선 토지 지방공유화 강령이 채택되었다. 1905년 혁명이 패한 뒤 청산주의에 섰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조국방위론을 폈다. 10월 혁명 뒤 시베리아 임시정부의 우랄 지역 위원을 지내다 물러나 학계로 돌아갔고, 1929년 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다. 1946년 모스크바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87카잔 대학 입학, 페도세예프 서클
- 1889카잔 사건으로 체포, 3년 수감
- 1896–1897《사마라 통보》 편집
- 1903멘셰비키 합류
- 1906제4차 당 대회 농업 문제 보고, 지방공유화 강령 채택
- 1908망명
- 1913사면으로 귀국
- 1918.07시베리아 임시정부 우랄 지역 위원
- 1918.11옴스크 농업대학 교수
- 1929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31.04.25멘셰비키 연합국 사건으로 모스크바 밖 유배, 닷새 뒤 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