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돌라 가이다

Radola Gajda

군단의 승리를 백군 정치로 확장한 장군

예카테린부르크 점령 직후, 가이다는 로마노프 일가가 며칠 전 살해된 바로 그 이파티예프 가옥에 자신의 사령부를 차렸다.

라돌라 가이다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내전에서 부상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지휘관이자 전간기 체코슬로바키아의 장군·정치가였다. 1918년 군단의 동부집단을 이끌며 노보니콜라옙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철도선을 장악하고, 중립과 무장투쟁 사이의 논쟁에서 전투를 밀어붙였다. 이후 콜차크의 백군에 합류했으나 지휘권을 잃고, 귀국 뒤 군 참모총장 대행과 파시스트 국민공동체 지도자를 거쳤다. 그의 군사적 반볼셰비즘은 체코슬로바키아 정치에서 파시즘으로 변형되었지만, 나치 점령기에는 저항을 도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시베리아의 체코슬로바키아 군단과 콜차크

1918년 5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시베리아 철수 과정에서 군단과 볼셰비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자, 가이다는 노보니콜라옙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이어지는 동부 지역의 군단 부대를 지휘했다. 그는 상관의 지시에 어긋나기도 하는 공세적 전술로 볼셰비키군과 싸우고 군단 부대들을 연결했다. 이 노선은 러시아 내전에서 중립을 유지하려던 토마시 마사리크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1918년 7월 예카테린부르크를 점령한 뒤 가이다는 그곳에 본부를 두었고, 12월에는 페름 점령 작전을 지휘했다. 이후 알렉산드르 콜차크의 초청을 받아 백군 지휘관이 되었으나, 적군이 주도권을 되찾고 콜차크군이 약화되는 가운데 1919년 7월 5일 해임되었다. 그해 11월 콜차크에 맞선 사회혁명당원들의 실패한 반란에 가담한 뒤 시베리아를 떠나 유럽으로 갔다. 이 경력은 군단의 철수와 러시아 내전 개입을 둘러싼 선택이 가이다를 백군 정치의 중심으로 옮겼지만, 콜차크군에서의 지휘 경력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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