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니 팔메 더트

Rajani Palme Dutt
영국 공산당 공산주의 영국 인도 1896–1974 ○ 자연사

CPGB 창립 당원이자 반세기 수석 이론가, 마르크스주의 인도사 서술의 개척자

1956년 흐루쇼프 비밀연설 후 더트는 말했다. '스탈린이라는 태양에도 당연히 약간의 흑점은 있다.' 소련 체제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덧붙였다.

영국 공산당 창립 당원으로 반세기 동안 수석 이론가를 지낸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 1934년 《파시즘과 사회혁명》에서 파시즘을 독점자본주의 위기의 극단적 형태로 분석했고, 1940년 《인도 투데이》로 마르크스주의 인도사 서술을 개척했으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반전 노선을 둘러싸고 해리 폴릿을 대신해 총서기를 역임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이론가의 작업: 파시즘 분석과 반식민주의

더트의 저작은 자본주의·사회민주주의·파시즘을 반제국주의의 틀로 체계적으로 비판했다. 전기 작가 존 캘러헌은 그를 당대 '영어권에서 가장 빛나는 마르크스주의 분석가'로 평가했고, 에릭 홉스봄은 1963년 서평에서 '여러 세대의 마르크스주의자가 정치 교육의 상당 부분을 그에게서 받았다'고 적었다. 그 작업은 1921년 창간해 죽는 날까지 편집한 《Labour Monthly》와 《Daily Worker》(편집장 1936–1938)를 통해 당의 교육 사업과도 이어졌다.

파시즘 분석을 대표하는 저작은 《파시즘과 사회혁명》(1934)이다. 더트는 파시즘을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극단적 단계의 경제·정치'로 규정하고, 1914년과 1929년의 세계 경제 위기가 자본주의의 합리적 자기 정당화를 더는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파시즘은 체계적 이론이 아니라 위기와 극단적 계급전쟁의 시기에 독점자본주의의 현실을 가리기 위한 '잡동사니식 차용'이며, 노동계급을 혁명에서 끌어내 부르주아 국가에 묶어두면서 스스로 '반자본주의'를 자처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파시즘 모두 부르주아 독재의 형태라는 정식에서 사회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을 안에서 와해시켜 파시즘의 진전을 도왔다. 그는 이렇게 썼다. '파시즘은 기만과 함께 주로 강제로, 사회민주주의는 강제와 함께 주로 기만으로 작동한다.'

식민지 분석 분야에서 더트는 영제국의 부(富) 수탈 기제를 추적했다. 친척인 로메시 찬드라 더트가 영국 통치 아래 인도의 부 유출을 밝힌 선구적 연구를 남겼고, 라자니 팔메 더트는 이를 발전시켜 영국과 식민지 사이 '불평등 교환'의 경제 메커니즘을 분석했는데, 이는 아르길리 에마뉘이 그 개념을 대중화하기 수십 년 앞선 것이었다. 1940년 《인도 투데이》는 마르크스주의 인도사 서술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1936년의 이른바 '더트-브래들리 논제'는 인도 공산주의 운동에 제헌의회 수립을 중심 요구로 내세운 광범한 반제국주의 인민전선 노선을 제시했다. 영국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제국이 '영국 노동조합 정치 전부의 말하지 않는 전제'이자 수도 노동계급과 자본 사이 조화의 '숨은 샘'이라고 비판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소련과 스탈린 노선에 흔들림 없이 충성하여 '스탈린의 영국 대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흐루쇼프의 비밀연설 의미를 축소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당내 강경파로 남아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대한 당의 비판과 1970년대의 유로코뮤니즘 지향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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